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경찰 총격에 사망 한인 여성, 당시 칼 안 들었다”

2024-08-07 (수) 서한서 기자
크게 작게

▶ ‘조울증’ 증세 겪던 25세 빅토리아 이씨

▶ 피격 장면 어머니가 생생히 목격 ‘충격’
▶유족 측 “경찰 무조건 총격 과잉 진압”

정신건강 문제로 출동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뉴저지주 한인 밀집지 포트리의 20대 한인 여성은 당초 발표된 것과 달리 사건 당시 칼을 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빅토리아 이(25)씨로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가 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광경을 이씨의 어머니가 바로 옆에서 생생히 목격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이씨의 어머니는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달 28일 당시 포트리 피나클 아파트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이씨 어머니에 따르면 이씨는 조울증(bipolar disorder)을 겪고 있었고, 그날 밤 딸이 침대에서 구르고 잠깐 소리를 지르는 등 불안증세를 보이자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이씨의 오빠에게 911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당일 오전 1시15분께 이씨의 오빠가 911에 전화해 앰블런스를 요청했다. 하지만 911 교환원은 정신건강 관련 신고절차에 따라 경찰도 앰블런스와 동행할 것이라고 이씨의 오빠에게 알렸다.

오빠를 통해 앰블런스 뿐만 아니라 경찰도 온다는 상황을 알게 된 이씨의 불안 증세는 그때부터 더욱 심해졌다. 순간 이씨는 평소 택배상자를 오픈할 때 사용하던 작은 접이식 주머니칼을 손에 들고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딸의 불안증세가 커지자 이씨의 어머니는 최근 발생했던 경찰의 총격사건 등이 떠올라 아들에게 다시 911에 전화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라고 시켰다. 이에 오전 1시20분께 이씨의 오빠는 911에 연락해 여동생이 작은 크기의 주머니칼을 들고 있다며 경찰은 아파트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경찰에게 먼저 상황을 설명하라고 시키는 동시에 딸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씨 오빠가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자 이미 경관들은 이미 문 앞까지 진입해 있는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이씨가 평소 키우던 개가 짖기 시작했고, 이씨의 어머니는 문을 닫고 경찰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오빠는 문 밖에서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누가 집안에 있는지와 열쇠가 있는지만 물었다. 열쇠가 없다고 답하자 경찰은 오빠를 옆으로 밀치고 강제로 문을 걷어차 부수기 시작했다. 이때 추가 경찰 병력이 현장에 도착했고, 한 경관이 오빠를 계단 쪽으로 데리고 갔다.

경찰이 문을 부수던 당시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주머니칼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을 목격하고 안도했다. 이씨는 이후 칼이 아닌 현관문 근처에 있던 5갤런 크기의 생수병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경찰이 이씨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총알은 이씨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을 맞아 반대쪽으로 관통했다.

총을 맞은 이씨는 쓰러졌고 순간 바닥은 이씨의 피와 그녀가 들고 있던 생수병에서 흘러나온 물이 뒤섞였다. 총격 당시 이씨의 뒤에 어머니가 서 있었음에도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거나 이씨를 진정시켜리는 시도조차 전혀 없이 총격을 가했고, 어머니는 순식간에 벌어진 딸의 피격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총격 발생 추정 시간은 오전 1시30분께로, 결국 최초 911에 전화한지 불과 15분 만에 경찰 총격이 이뤄진 것이다.

이씨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경찰은 이씨와 어머니를 분리시키고 지혈을 위한 수건을 요청하는 등 응급조치에 나섰다. 이때까지도 이씨 가족이 요청한 앰블런스 구급요원과 의료장비 등은 전혀 볼 수 없었고, 결국 경찰 여러 명이 들것도 없이 이씨를 들고 밖으로 옮겼다. 이씨는 인근 잉글우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날 오전 1시58분께 숨을 거뒀다.

포트리 경찰은 총격 이후 이씨 어머니와 오빠를 병원이 아닌 포트리 경찰서로 데려갔고, 어머니와 오빠는 이씨의 생사여부를 여러차례 거듭 물었으나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수시간 뒤에야 경찰과 동행해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첫 911 신고 이후 약 15분 만에 경찰의 총격이 가해졌다. 더욱이 비폭력적이고 비무장 상태였음에도 대화를 통해 진정시키거나 테이저건 등 비살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민간인을 사살했다”며 “우리는 앰블런스를 요청했는데 경찰만 현장에 왔다. 출동한 경찰은 안전한 조치에 대해 가족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가족의 우려도 무시했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없이 일방적으로 강제로 문을 부수고 곧바로 총을 쐈다”며 비통해했다.

<서한서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