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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시위 유혈진압’ 방글라 총리 사임·도피…군 “과도정부”

2024-08-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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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자녀 공직할당’ 반대 시위 300여명 사망…군 “책임자 처벌”

▶ 집권 15년 막 내리자 헬기·군용기로 인도 도피說…시민들 축제 분위기
▶ 4연임 등 총리만 5차례…경제 부흥 평가 속 ‘권위주의적 통치’ 비판도

셰이크 하시나(76) 방글라데시 총리가 반정부 시위 격화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결국 사임하고 해외로 도피했다.

5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와커 우즈 자만 육군 참모총장은 이날 현지 국영TV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하시나 총리가 사임했다면서 군부가 대통령의 지시로 과도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시나 총리는 이로써 지난 2009년부터 4연임을 통해 이어온 15년 장기 집권의 막을 내렸다.


자만 참모총장은 "이 나라는 고통을 많이 받아왔고 경제는 큰 영향을 받았으며 많은 국민이 살해됐다. 이제는 폭력을 중단해야 할 때"라며 "내 연설 이후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에 관해 조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면서 대학생들에게 진정을 당부하며 군부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방글라데시군은 2007년에도 대규모 불안 사태가 퍼지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2년 동안 군이 지원하는 과도 정부를 세운 바 있다.

하시나 전 총리가 어디로 도피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그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시위대가 이날 수도 다카의 총리 관저에 몰려든 직후 AFP에 총리가 헬기를 이용해 방글라데시를 떠났다고 말했다. 다만 행선지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AFP는 전했다.

한 인도 매체는 실시간 항공기 위치확인 사이트를 인용해 하시나 전 총리와 여동생이 함께 탄 방글라데시 군용기가 방글라데시와 가까운 인도 동부 지역 상공을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시나 총리 사임 소식에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현지 방송은 시민들이 총리 관저 경내에서 달리며 카메라를 향해 기뻐 손을 흔드는 모습 등을 내보냈다.


또 하시나 총리 사임 발표 직후 전국 인터넷망도 정상화돼 휴대전화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하시나 총리 사임 계기가 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지난 6월 다카 고등법원 결정으로 촉발됐다. 고법은 2018년 당시 대학생 시위로 폐지됐던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 30% 할당제' 부활을 결정했다.

이에 구직난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은 제도 부활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 시위 도중 시위대와 경찰 간 유혈 충돌로 200여명이 사망하고 다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대법원이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할당 비율을 30%에서 5%로 낮추는 중재안을 제시, 시위가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이후 시위를 주도해온 대학생들은 학생 지도부 석방과 총리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가 수용되지 않자 지난달 말 시위를 재개했다.

시위에는 일반 시민까지 가세했고 총리 사퇴 요구가 본격적으로 나왔다.

지난 4일 하루에만 유혈 충돌로 100명 가까이 숨져 이번 사태로 모두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장수 여성 국가지도자로 꼽히는 하시나 총리는 올해 1월 야권 보이콧 속에 치러진 총선 승리로 5번째 총리직에 올랐다.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아버지'로 여겨지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의 장녀인 그는 반독재 투쟁과 투옥 등을 거쳐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집권, 2001년 7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후 경제 파탄과 부정부패 등으로 실각했고 절치부심 끝에 2008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 2009년 1월부터 총리에 복귀해 4연임했다.

집권 기간 방글라데시 경제를 끌어올린 것은 공으로 평가받지만, 야권과 서방은 그가 권위주의적 통치로 반대파와 인권을 탄압한다고 비판해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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