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경제학자는 모두 공산주의자?

2024-06-24 (월)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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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의 경제학자는 거의 모두 공산주의자다.”

적어도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그렇게 말한다. 최근 RNC 대변인 안나 켈리는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주장은 외주업체들과 중국 공산당이 날조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선언했다.

켈리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가 제안한 관세의 비용을 미국인 소비자들이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여러 경제전문가들의 경고에 대한 RNC의 공식 반응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내놓은 결론은 부분적으로 전 대통령이 재임시 일으킨 수차례의 무역전쟁에 바탕을 두었다. 이른바 ‘트럼프 관세’의 비용을 여러 차례에 걸쳐 면밀히 분석한 경제전문가들은 관련 비용이 해당 제품의 가격 인상을 통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미국인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에 나온 분석 결과는 트럼프의 새로운 관세안이 미국의 중간소득 가구에 매년 1,700달러의 추가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의 사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의 간부들은 그가 쏟아내는 ‘막장 아이디어’를 일일이 두둔하고 방어한다. 이같은 사정 탓에 트럼프 관세안에 비판적인 경제전문가들은 ‘외주업체’ 혹은 막시스트로 매도된다.

트럼프가 최근 제시한 관세안의 예상 경비는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트럼프가 제안한 10%의 보편관세와 중국제품에 대한 60%의 추가관세에 따른 경비는 2017 감세가 연장될 경우 미국인들이 얻게 될 금전적 혜택을 말끔히 씻어낸다. 또한 소득 하위 80%권에 속한 가구들은 실질적으로 세금 순 인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트럼프의 가장 온건한 세제안을 가상했을 때의 시나리오다.

지난주 공화당 의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트럼프는 소득세를 전면폐지하고 이를 관세로 대체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같은 제안의 타당성은 산술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하다. 현재 연방소득세로 거둬들이는 세수는 연 3조 달러 정도다. 소득세를 폐지하면 당장 3조 달러의 세수결손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매년 우리가 수입하는 상품의 총액은 3조 달러에 불과하다. 관세가 아니라 수입품의 가치가 3조 달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가 모든 수입품에 100% 관세를 물릴 수 있지만 이처럼 세금이 올라가면 수입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은 자명하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 상품에 100%의 보편관세를 매긴다 해도 소득세 폐기에 따른 세수결손을 보전할 수 없다. 무모한 관세는 미국 경제를 해칠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세제의 역진성을 강화하며 우방국들의 보복을 불러온다.

정치적 실행 가능성도 문제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다 해도 트럼프는 소득세 완전 폐기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허풍에 불과하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가 벌였던 무역 전쟁이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철강 관세가 국가안보에 필요하다”는 등의 거짓 이유를 들어가며 대통령의 결정을 정당화하려 시도했다. 보편관세율을 100%로 하건 10%로 하건 간에 그가 다시 행정명령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 당시 트럼프의 무역전쟁에 소리죽여 불평하던 몇몇 공화당의원들을 포함한 연방의회 의원들은 그의 폭주를 막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속한 정당의 소속원들은 이전보다 더욱 통제하기 쉬워졌다. 이미 일부 의원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정부지출 수준을 결정하는 의회의 헌법적 권한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필요할 경우 공화당은 무역과 관련한 대통령의 재량권 역시 확대하려 들 것이다.

여기에 보태 바이든 대통령까지 트럼프를 거들고 있다.


2020 대선 맞대결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의 관세가 소비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해가 된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근래 들어 바이든은 트럼프가 제안한 무역전쟁 강화안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심한 불일치를 보인다. 바이든은 트럼프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다른 무역장벽으로 대체했다. 그것도 모자라 바이든은 연방 법정에서 트럼프의 무역정책과 전 행정부의 관련법 해석에 동의했다. 바이든 정부는 무역법의 애매한 법조항이 대통령에게 관세와 관련해 “거의 무제한의 재량권”을 허용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무역법의 해석을 대폭 행정부에 위임하도록 만드는데 앞장섰다. 결과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카토 인스티튜트의 학자이자 무역법 전문변호사인 스캇 리시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마지막으로, 누가 재집권한 트럼프의 스탭이 될지 살펴보자.

1차 집권기 동안 트럼프가 마구잡이로 쏟아낸 최악의 정책 아이디어는 실행되지 않았다. 부분적인 이유는 그의 무능한 하수인들이 졸속하게 일을 처리한 탓에 행정부가 연이어 소송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유능한 심복들조차 어리석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보스의 ‘본능’이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저지했다. 예를 들어 경제보좌관이었던 개리 콘은 트럼프의 눈에 뜨이기 전에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무역 관련 문건을 치워버렸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막무가내인 보스를 상대로 자신에게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납득시킴으로써 시장붕괴를 막았다. 반면 존 F.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세청(IRS)을 동원해 자신의 적들을 괴롭히려는 트럼프의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들과 같은 ‘방안의 어른들’은 트럼프의 집권 2기 행정부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트럼프 측근들의 모임인 프로젝트 2025는 보스의 명령을 어김없이 실행하고, 그의 뜻을 좇아 무역을 비롯한 모든 이슈를 꼼꼼해 처리해줄 ‘전문적 능력을 지닌 충성분자’ 선발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2차 집권기를 떠받칠 트럼프의 인재들은 ‘비밀 공산주의자’가 아니어야한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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