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푸틴-김정은의 브로맨스. 그 진상은…

2024-06-2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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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성위기(poly-crisis)가 뉴 노멀이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내습. 바로 뒤이은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가자전쟁…. 2020년대 지구촌이 맞고 있는 이 같은 현실과 함께 나오고 있는 말이다.

이 2020년대는 어느 시대와 비교될 수 있을까. ‘1910년대, 1차 대전을 앞둔 시대상황과 흡사하다.’ 일각에서의 지적이다. ‘그 보다는 1930년대의 상황을 더 빼닮았다.’ 다른 주장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공격했고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폴란드를 침공, 분할 점령했다. 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동유럽에서 벌어진 각기 별개의 전쟁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상황을 바로 이 프레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거다.

또 다른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20년대는 1940년대 말, 혹은 50년대 초의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유라시아 4개 독재체제 축 형성과 함께 불량국가 연합세력 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대립으로 양분되고 있는 현 국제정세가 냉전(Cold War)초기 상황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나온 진단이다.

2024년 6월 19일. 6.25 74주년을 한 주 앞둔 시점에서 평양 발로 전 세계로 전송된 사진 한 장. 러시아의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 나란히 사열대에 섰다.

그 모습이 그렇다. 뭔가 강한 기시감을 주고 있다고 할까. 6.25의 원흉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을 떠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 다소 막연한 관념어로만 들려왔던 제 2의 냉전(Second Cold War)이란 말이 보다 구체성을 띠고 한반도를 엄습해 오고 있다.

뭐라 했더라. ‘조(북한)?러 포괄적인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라고 했던가. 사실상 과거 냉전시절인 1961년 체결된 조?소(소련) 방위조약 복사판에 가깝다. 외부의 침략을 당했을 시 서로 간의 군사 개입을 명시한 그런 조약에 푸틴과 김정은이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6.25와 우크라이나침공의 전과자들이다. 그런 러시아와 북한이 있지도 않을 국제사회의 선제공격을 가정해 군사협력을 약속한 것이 그렇다. 한국으로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린 격이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단호한 대처는 당연한 조치다.

이 조약 체결은 그러나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북한지원도 지원이지만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참전의 길을 열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격에 대한 방어전이다.’ 푸틴이 내세운 논리다. 이 논리를 왜곡해 비약시키면 러시아가 침략을 당했으므로 조약 당사자로서 북한이 군사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북한군은 ‘군사적 버전’의 이주 노동자(guest worker)로서 외화벌이를 위해 우크라이나전선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일부에서의 관측이다.

푸틴과 김정은, 두 깡패국가 지도자의 브로맨스. 이로 인해 현실로 다가온 북한과 러시아와 사실상의 냉전관계를 맞게 된 한국. 이는 순전한 지정학적 변화의 부산물이다.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다.

김정은은 국제적 기피 인물이었다.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회담에서 트럼프에게 망신을 당한 이후 계속 푸틴에게 구애를 해왔다. 그러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특별작전’이 대실패로 낙착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탄약 등 군사물자고갈 상태를 맞아 푸틴은 김정은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

이후 이 둘의 관계는 급물살을 탄 듯 가까워졌다. 푸틴의 평양방문이 그 절정이다. 무엇이 그러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극도의 초조감’이라는 게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푸틴은 푸틴대로,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극도의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다. 둘 다 국제적 왕따신세다. 거기에다가 경제가 말이 아니다. 그러니….

10년 전만 해도 G7지도자들과 같은 반열에 있었다. 그 푸틴의 국제적 위상이 우크라이나전에서 패색이 짙어가면서 말이 아니게 됐다. 거기에서 비롯된 초조감. 그 발로가 김정은과의 만남이라는 거다.

동맹관계로의 북한과의 관계격상. 그 과정에서 보여준 푸틴의 행보, 그 이면에는 더 짙은 초조감이 묻어있다는 것이 컨버세이션지의 분석이다.

북한의 지원만으로는 우크라이나전쟁을 이길 수 없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중국의 도움이다. 그 사실을 푸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중국이 머뭇거리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두려운 것이다. 그 중국을 격동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평양과의 관계를 준동맹관계로 격상시키는 등 ‘깜작성’ 북한 카드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두 가지다. 푸틴과 김정은의 밀월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한해서’만 가능할 뿐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 하나다.

과거 그러니까, 74년 전 마오쩌둥은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스탈린의 요청에 따라 북한을 도와 한국을 침공했다. 제 2의 냉전 상황을 맞아 그와 흡사한 일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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