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칼럼> 위선자
2024-06-13 (목)
판데믹이 이후로 집에서 재택근무하는 큰 딸이 있기에 목사 아버지로써 여러 면에서 조심 하는데 하루는 그만 말 실수를 했다. 딸 앞에서 한국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타인종을 비하하는 듯이 들려졌는지 바로 딸이 대뜸 하는 말, “아빠는 목사님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것은 위선자들이 하는 말이잖아요!”라는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다. 순간 당황이 되면서 식은 땀이 낳고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다가 결국 사과를 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목사 아버지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거룩한 부담이지만 나를 포함하여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올바른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바로 나의 가정에서부터 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로서 아는 한 지인이 단기 선교를 간다고 해서 축복 기도를 해서 보냈는데 갑자기 그 지인의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집에 와 달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느낌이 별로 안좋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그 지인의 집에 가보았더니 집안은 온통 어지럽혀져 있었고 불신자 남편과 어린 두 자녀가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서 굶다시피 하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자신들을 버리고(?) 선교 한답시고 떠난 아내는 위선자 아닌가하며 갖은 불평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정말 목사로서 너무 황당하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수조차 없었다. 아무리 선교도 중요하지만 집안이 이런 상태인데 나두고 갔기에 남편과 아이들이 말하는 위선자라는 말에 대해 대신 변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위선자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모습과 실제 삶 속에서의 모습이 완전 다른 모습일때… 교회에서는 거룩해 보이지만 삶 속에서는 거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비추어질 때… 위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지만 이미 뉴스나 신문을 통해 보도가 된 것으로 최근에 한국을 아주 떠들썩하게 만든 한 유명한 트로트 가수의 사건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가수가 밤늦게 음주 운전을 하고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게 된 사건으로서 한 도로에서 정차했던 택시를 들이받은 뒤 그대로 달아났고 결국 나중에 구속까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다가 말을 바꾸어 조금 마셨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결국 음주 운전을 시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매니저에게 “대신 자수해달라”고 말한 통화녹취가 발견되면서 범인도피교사로 구속이 된 것이다. 상황을 숨기기에 급급했으며 진실되게 행동하지 않고 거짓말의 거짓말이 더해지고 사건을 은폐하려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인으로써 오히려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으면 좋았으련만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들어서 알았던지 한 지인이 나에게, “목사님! 이 가수 완전히 위선자이네요! 기독교인으로 여러 교회에서 찬양 집회도 하고 간증도 하는데 뺑소니에다가 거짓말에다가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자수하라고 종용하는 것을 보면 아주 질이 않좋은데요. 크리스찬으로써 너무 부끄러운 것 아닌가요?”라고 하는 것에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요즈음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유명한 목회자나 공인이 위선자적인 모습을 보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욕을 먹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의 고백,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아라…”(빌립보서 3:17)이 그 어느때 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 말은 얼뜻 듣기에 거만한 태도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지만 사실은 교만한 발언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고백할 정도로 겸손한 자세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본받으라’는 말의 뜻은 비록 부족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외침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 자신부터 이런 몸부림이 있는 삶을 살고자 결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