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석유’ 구리 확보전…일 “자원탐사 출자 확대”
2024-06-07 (금)
서울경제=정혜진 기자
▶ 일본 정부 출자 비중 50→75%
▶미, 해외 광산 지분 인수 추진
▶ 중은 국영기업 통해 투자금 쏟아
▶‘오일 머니’도 광산 지분 매입
인공지능(AI)발(發) 전력난 대응의 핵심 자원으로 떠오른 구리를 확보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력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구리에 대한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반면에 탐사·개발의 어려움으로 공급량이 뒷받침되지 못해 수급 불균형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잇따라 구리를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남미·아프리카 등의 구리 광산 지분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구리를 비롯한 핵심 자원을 채굴하는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도 속속 나서는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민간기업의 광물 투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출자할 수 있는 비중을 현행 최대 50%에서 75%로 상향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구리 광산 개발 사업의 경우 정부가 투자 총액의 70~80%를 지원하더라도 민간 업체가 감당해야 할 출자 금액은 수조 원에 이른다. 닛케이는 “정부가 출자 부담의 과반을 짊어져 (자국 기업이) 광물 사업권 획득을 둘러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사업 리스크가 높은 자원 탐사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 방안도 내놓는다. 일본 기업이 출자를 검토하는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해 경제산업성 산하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검토를 거쳐 선행 출자한 다음 사업권을 기업에 인계하는 구조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기업은 사업권 인계 시 일정 비용만 부담하면 돼 진입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일본은 민간기업들의 자원 탐사를 활성화해 구리 등 중요 광물의 자급률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현재 일본의 자원 자급률은 50% 수준이다. 새로운 조달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원 자급률은 2030년대 후반 40%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충 등으로 구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원 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리는 송전망을 비롯한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다. JOGMEC에 따르면 일본의 구리 수요는 2040년까지 135만 톤으로 현재보다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일본이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광산에 매장된 구리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첨단산업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역시 구리 확보전에 돌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30억 달러(약 4조 1200억 원) 규모의 잠비아 광산 지분 인수와 관련한 논의에 착수했다. 미국은 지난해 구리를 국가 핵심 광물로 지정한 후 사업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키스탄 소재 구리 광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방안 역시 추진하고 있어 협상이 마무리되면 2028년부터 채굴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국영기업을 통해 막대한 투자를 벌이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해외 광산 투자에 쏟은 금액은 전년 대비 158% 폭증한 190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은 최근 콩고에서 구리 광산을 개발하는 셰마프를 인수하기 위한 사전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AI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동 국가들도 구리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알 나흐얀 왕가의 투자 회사인 IHC는 올해 광업 부문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HC는 자회사 IRH를 통해 잠비아 콘콜라·모파니 등 구리 광산들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RH는 4월 잠비아 모파니 광산의 지분 51%를 11억 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국가 수익원 다각화를 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광산 분야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5년까지 자원 개발 등 분야에서 750억 달러 규모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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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정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