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사회 리더들은 어디에

2024-06-05 (수)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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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한인 양용(40)씨 사건이 발생한지 딱 1달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 LA 한인타운 윌셔 잔디광장에는 ‘양용 정의구현 시민위원회(이하 JYYPC)’의 주최로 100여명의 시민이 모여 양용씨를 추모하고 경찰의 과잉 대응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양용씨의 중학교 친구도 있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참석한 일본계 미국인도 있었다. 또한 사회운동가이자 흑인 교회를 이끄는 큐 진마리 목사 등 인종을 불문하고 모인 집회 참가자들은 한마음으로 양용씨의 억울한 죽음에 깊이 애도하고 모든 증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경찰의 공권력 과잉을 개선하라고 외쳤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빠진 유가족을 생각하면 사건 자체도 마음 아프지만,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순간은 기사에 달린 일부 한인 네티즌들의 악플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한인 언론에서 양용씨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경찰이 칼을 손에 든 정신질환자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정당하다는 요지의 댓글을 달았다. 경찰을 옹호하는 댓글들은 사건 발생 2주 만에 바디캠 동영상이 조기 공개되면서 극에 달했다.


LAPD가 임의대로 편집한 바디캠 비디오에서 양용씨는 분명히 칼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양용씨가 아무리 칼을 든 정신질환자라 할지라도 공공장소도 범죄현장도 아닌 집 안에서 경찰이 진입을 막아서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총격을 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경관들의 안전을 위해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정신병원 이송을 요청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왜 비살상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보인 경관들의 행동은 정신질환자의 흥분된 상태를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총을 맞고 쓰러진 양용씨에게 의료적 처치를 하지 않은 채 수갑을 채우는 잔인한 행위마저 저질렀다.

물론 경찰의 안전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경찰의 희생 없이 터프하기 그지없는 미국 내 치안이 이정도로 유지됐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찰에 의해 범죄 경력이 없는 정신질환자가 사망했다. 정확하게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정신질환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무조건 총을 쏠 상황이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희생된 이가 무고한 시민이 아닌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경찰이 총을 쏠 수밖에 없는 적법한 상황이었는지 따져보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그렇지 않다면 경찰의 폭력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고, 공권력의 과잉으로 파생되는 희생자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인 커뮤니티는 LAPD가 아닌 독립적인 기관을 통한 객관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경찰의 정신건강 환자 대응 방법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많은 한인 단체들에서 한목소리로 경찰을 규탄할 것이라 생각했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사건 발생 직후 LA 총영사관과 LA 한인회가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액션을 취하기는 했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JYYPC가 집회를 계획하고 선언서를 발표하며 한인 주요 단체장들에게 집회 참가를 요청했지만 이날 집회에 나타난 주요 한인 단체 관계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직 한인 정치인들과 LA 총영사관 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큐 진마리 목사는 3년 전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언급했다. 진마리 목사는 “양용씨 사건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처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흑인 커뮤니티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여 미국사회 전체가 흑인들의 눈치를 볼 정도로 입지를 다져냈다. 그들은 사회적 잣대를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왔다. 이와는 반대로 일부 한인들의 무분별한 악플과 한인사회 리더들의 무관심을 보며, 한인사회의 단결된 모습을 기대했던 기자는 씁쓸하고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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