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구는 운명’이라 하던가…

2024-06-0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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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해야 해나. 마땅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2세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내 한 몸 살아가기도 버거운 판이니 장래의 인생설계도에 자녀를 낳는 계획 같은 건 아예 없다는 거다. 젊은 세대들이. 이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하나.

‘한 국가사회가 실패하는 주원인은 그 사회가 스스로 살지 않기로 결정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데이빗 골드먼이 일찍이 한 말이다.

한 문명이, 한 국가사회가 무너진다. 그 경우 원인을 생태계에서 또는 정치, 경제적 인과관계에서 찾는 게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 사회 문화의 심저(心底), 다시 말해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에서 찾아야한다는 주장이다.


한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을 부지부식 간에 드러내는 것은 출산율이다. 장래에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내가 죽은 후 대홍수가 닥치든 말든’식의 세기말적 퇴폐사조에 젖어 있다. 그런 사회가 보이는 증세의 하나가 중증의 ‘서행성(徐行性) 자살 증후군’이다. 극히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거다.

이 증세가 한 때 만연했던 곳은 유럽, 특히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국가들이었다. 오늘날 그 증세가 두드러지게 심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은 동아시아지역이고 중국이다.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한 여자가 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최저 2.1을 유지해야한다. 중국의 합계 출산율은 현재 1.0수준으로 계속 떨어져 0.8선을 맴돌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무엇이 이 같이 낮은 출산율을 불러왔나. 1980년에서 2016년까지 중국공산당이 추진해온 ‘한 가족 한 자녀’정책이 우선 그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 정책을 한 세대 이상 강력히 시행한 결과 50대 인구는 2억1,600여 만에 이르는 반면 20대 인구는 1억8,000여 만에 불과한 심각한 불균형을 불러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계층 인구의 격감을 불러온 것이다.

이 시기에 억대(추산 수치)에 이르는 여자 아기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태중에서 죽어갔다. 남아선호사상의 부산물로 이로 인한 심각히 모자라는 여성인구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신세대 여성은 아기 낳기를 꺼려한다. 신세대 여성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가정의 자녀수는 1.7명으로 각급 여론조사들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베이징이 특히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탕핑’사조의 만연이다.


코비드-19 이후 중국의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자포자기식인 일종의 아노미(anomie)현상’이다. 거기에다가 계속 되고 있는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예상되는 것은 대대적인 인구감소다. 현재 14억에 이르는 중국 인구는 2050년께 13여 억(유엔 전망), 더 비관적인 전망은 10억 2,000여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구감소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은 고령화다. 2050년께 중국의 60세 이하 인구는 크게 줄어드는 반면 70대, 80대, 90대 등 초고령 인구는 오늘날에 비해 2.5배가 늘어난다(1억8,000여 만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15~64세 근로연령 인구는 상대적으로 크게 줄면서 이 연령 집단의 부양 부담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인구는 운명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꽁트가 한 말이었던가. 인구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력과 경제성장의 예측근거로, 모든 조건이 같다고 할 때 보다 큰 경제, 더 나가 더 강력한 군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결국 인구다.

과거 스페인이,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요소 중 뺄 수 없는 것은 인구다. 인구폭발이 이루어진다. 그 과잉(?)인구, 특히 남성들의 왕성한 해외진출이 이루어진다. 이 같은 패턴 정착과 함께 ‘대항해시대’와 ‘팍스 브리타니카’시대가 각각 열린 것이다.

반대로 유럽문명이 2차 대전 이후 쇠락한 것은 인구 감소의 영향이 크다. 1950년 유럽 백인의 규모는 전 세계인구의 22%, 미국, 호주 등 까지 합쳐서 29%에 이르렀으나, 2015년에는 그 비중이 15%로 줄면서 유럽의 파워는 전반적으로 시들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포린 어페어스 등 미국의 유력 안보, 해외정책 전문지들의 하나같은 지적으로 인구 급감의 중국은 지정학적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 동력이 뚝 떨어진다. 투자도, 부의 축적도 힘들다. 고령화로 사회적 부양부담만 가중되고 적정선의 군 병력 유지도 어렵다. 국내외적 도전이 점증하면서 국가적 야망과 역량 사이의 갭은 날로 깊어간다. 격심한 인구감소와 함께 중국이 겪게 될 상황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미국의 인구동향이다. 2007년 2.12를 기록했던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1.7로 떨어졌다. 그러나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복음주의적 보수성향의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유럽과 같은 수준의 출산율 하락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미국은 여전히 이민 인기 1순위 국가다. 젊은 두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비숙련 노동인구도 미국으로,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수많은 중국의 중산층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 불법이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미-중 무한 경쟁시대. 시간은 중국이 아닌, 미국 편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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