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끊거나 불이익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작성한 명단을 블랙리스트(blacklist)라고 한다.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살생부(death note)이다. 블랙리스트는 권력자들이 자신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말을 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바벨탑 이야기(창 11:1~9)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시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1절)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공부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이다. 바벨탑을 지을 때와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렵게 외국어를 배울 필요도 없고 해외여행을 할 때 언어 때문에 겪는 불편함도 없을 것이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언어와 말을 쓰도록 강요 받던 시대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 통치하면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할 목적으로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실시하고, 학교 수업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하고, 관공서와 학교에서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하나의 언어와 말을 하면서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는 말은 절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과 같다. 권력의 중앙집권화는 다른 의견과 생각을 배제하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배척함으로써 전체를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할 때 국가는 강력한 추진력을 갖게 되고 신(神)과 대적할 만한 제국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바벨론도 마찬가지였다. 바벨론 제국은 정복전쟁을 통해 피정복민의 전통과 문화를 말살하고 바벨탑을 높이 쌓아 자신들이 믿은 신인 마르둑을 최고의 신으로 숭배하였다.
바벨론은 ‘신(神)의 문’이라는 뜻에서 탑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하나의 언어와 말로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생각이고, 바벨탑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긴 성경의 저자에게 ‘바벨’은 ‘혼란’을 의미하였다(창 11:9). 하나의 언어와 말만 허용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독점은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고 인간을 교만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탑을 허물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 11:7) 하셨다.
바벨탑 이야기가 불통의 사건이라면,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은 소통의 사건이다.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와 말로 교만하여 짐으로 혼란의 결과를 가져왔다면, 성령강림은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행 2:11) 소통의 사건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알아들었다. 하나님은 바벨탑으로 인한 불통의 사건을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을 통해 소통의 사건으로 변화시키셨다.
진정한 소통은 강자의 논리로 하나의 언어와 말을 사용하면서 다른 생각과 의견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보다도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른 생각과 말을 존중하고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바벨탑을 허무신 하나님은,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이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하고,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보호를 받도록 하시는 분이다.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 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