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일 교수(버클리 신학대학원)의 인도네이사 선교기행
▶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 ‘복음화’ 전망 밝다
박상일 교수가 인도네시아신학교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4년 만에 다시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2020년 센트럴 자바스마랑 소재 압디엘 신학교(STT Abdiel Theological Seminary)방문후, 다시 가서 봉사하기로 한 약속을 팬데믹으로 지키지 못해빚진 기분이었기에,한편으로는 염려도 되었지만 옛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인도네시아신학교 특강 참석자와 함께 박상일 교수(뒷줄 가운데) 기념촬영. 신학교육을 통한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
원래 계획은 최근 캠퍼스에 신축된 게스트 하우스에 한 주간 머물며, 교회설교, 신학생 세미나 및 지역 목회자들을 위한특강 등 3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었으나, 가 보니 5개로 늘어 힘들었지만 더 많은 곳을 찾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난번은 한국을 거쳐 가서 잘 몰랐는데,이번엔 샌프란시스코-싱가폴 직항의 긴여정,현지의 궂은 날씨로인한 지연, 자카르타 공항에서의 늦은 밤 레이오버등으로 목적지에 이르니 집 떠난 지 만 하루가 지나서야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1월 중순임에도 느껴지는 뜨거운 적도의 열기와 코 끗에 다가온 매연에 긴장하며,마중 나온 신학교 데미아누스교수의 안내로 곧바로 캠퍼스로 향했다. 토요일 아침임에도 좁은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오토바이 행렬,그리고 그 틈 사이를 노련하게 가로질러 간 우리 운전자의 실력은 감동자체였다.캠퍼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캠퍼스 맞은편 식당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널 때,도로의 상태나 주변 건물이 꼭7-80년대 한국의서울 외곽 어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주일 아침 40분 거리의 풀리한이라는 농촌지역에 도착하니 구불구불한 도로 옆 채소밭과 마을 전경이 꼭 한국의 어느 산골 마을 모습 그대로다. 7시 예배를 위해 교회에 도착,정이 넘치는 남녀노소 40여명과열정적으로 찬양하고,나는 “하나님은 아신다”(시편 139)는 제목으로 설교했다.통역을 맡은 데미아누스 목사는 본래 출신 지방이 달라 교인들과 언어가 다르지만 국가언어인 바하사를사용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왜 예배시간이 7시인가? 예배 후 농사일을 해야 하고 한 낮에는 더워서 일을 할 수 없기때문이라고 했다.이슬람교도가 인구의 거의 90%에 이르는 인도네시아지만, 그 농촌 지역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고 가면서 보니 길가에 많은 교회들이 보였다. 60년대 당시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종교 하나씩을 선택하게 했고,바삐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하루 5회 기도를 요구하는 이슬람 대신 기독교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 후,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의 박해를 받게 되면서 기독교 인구가 줄었고, 실제로 우리에게 그날 운전을 해준 학교 직원의 경우 위의 친형제 두 가정이 집과 텃밭을 준다는 유혹을 받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가족과의 인연도 끊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슬람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다.
네덜란드 식민지시절 총독 사무실 앞에서 기념사진
한국에서 파송받아 지난 30여년 간 압디엘신학교에서 교회 음악을 가르치고,많은 음악 목회자, 사역자 들을 양성해 오신 이필환김영숙 선교사 내외분에 의하면,그간 이슬람의 공격적인 선교로(학교, 병원, 공공 기관) 일부 지역의 경우 기독교인들의 수가 줄었고,이슬람과의 마찰없이 공존하는 것이 큰 선교적 과제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도네시아는 국민 평균연령이 30이 안되는 젊은 나라이고,인력과 자원이 풍부하며,국민소득도 꾸준히 성장하여 멀지 않아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 더욱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인도네시아 교회의 장래는 밝게 보는 시각이 많다. 그 예로 가는 곳 마다 수 천명 이상이 모이는 대형 교회가 즐비하고,교회들 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넘쳐나며,압디엘 신학교의 경우 4년 전에 비해 학생들 숫자가 부쩍 늘었고, 캠퍼스에도 힘이 넘침을 느낄 수 있었다.
스마랑 시내와 학교에서 두 시간 거리의 쿠도스 지역에서 가진 화요일 및 수요일 목회자 세미나 (특강 제목:“창조적인 설교를 위한 성서해석 방법론”)에는 각각 수 십여명의 남녀 목회자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고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김영숙 선교사에 의하면,많은 교회에서 이웃들을 위해 방과후 수업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이웃을 섬기고,특별히 음악을 통한 전도는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압디엘에서한국어를 가르치며 이웃 대학 캠퍼스에서 사역하는 대학생 선교회 소속 김진용 선교사에 의하면,대학가에서 기독교 선교가 이뤄져 많은 무슬림 여학생들이 히잡을 쓴 채로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여하는 등 복음에의 관심자와 개종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지도자 양성이다.2억 8천의 인구가 1만 7천여 섬에 흩어져 사는 방대한 가능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복음화에 필요한 것은 양질의 신학교육 및 영성 훈련이며,가난한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은 중요한 투자로 여겨진다.압디엘신학교의 경우 학부과정 1년 학비는 1,000불 정도이지만,신임 변호사의 두 달치 월급이 넘는 액수이니 일반 가정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고,미국과 한국의 일부 교회들의 선교헌금으로 가난한 학생들을 돕고 있다고한다.
스마랑 지역일정을 마치고, 일 주일 후 동참한 가족과 함께 나는 신학교 교장의 남편이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저녁 설교를 하기 위해자바섬 남쪽3시간 거리의 쿠토아료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고속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방 국도로 한없이 가야 하는 여정은 지루하기는 했지만,덕분에 지방 소도시의 동네 구경 사람 구경을 차 안에서 원 없이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교회에서 가까운 곳 인도양 해변가를 방문하니 많은 주민들이 나와 저녁 노을을 즐기고 있었다.가족끼리 나와 해변가 위를 걷는 이들,모래성을 싸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샌프란시스코 어느 해변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여성들 대부분이 무슬림 복장을 한 것과 주변 노점에 놓인 과일들이 대부분 처음 본 것들이라는 것.동행하신 목사님의 환대로 두리안,맹고스틴 등 여러 열대과일을 맛보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저녁 예배를 마치고,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를 뚫고 다시 신학교 캠퍼스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이 되었지만,혼신을 다해 하루 종일 우리를 위해 수고한 데미아누스 목사와 운전수게아 전도사는 피곤한 기색도 하지 않고,세 시간 후에 다시 숙소로 찾아와 발리로 향하는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발리에 도착하니가는 곳 마다 힌두교 사원과 구조물이 거리마다 도배를 했고,세계적인 관광지 답게 외국인들이 가득했다.상상 이상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도시 매연과 주민의 80이상인 힌두교들이 하루에 한번 자기 집의 제단에서 드린다는 향불 냄새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그러나, 가는 곳 마다 다양한 열대 과일들의 그 진하고 달콤한 맛들은 이번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넉넉했다.삼일 후 자카르타에 도착을 하니,버클리에서 만난 예후다와 란도네 두 가정이각각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어 그 간의 밀린 이야기와 정을 나눌 수 있었고,그들이 대접해 준 인도네시아 토종 음식과 자카르타판 한국음식은그간 여행길에 지친 우리 몸에 새 힘을 주었다.
두 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토요일 오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시원하고 더 없이 맑은 베이지역 공기는 다시 한번 우리가 얼마나 축복된 땅에 사는 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고,하나님 앞에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