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자 없이는 은퇴도 없다

2024-05-08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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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를 원치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할머니는 은퇴계획을 접어야 한다.

전에도 말했듯 미국의 경제 붐을 이끄는 동력은 상당부분 이민자들에게서 나온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모면했고, 기대 이상의 고용성장을 이루었다. 이민 증가로 노동시장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연방준비제도, 혹은 월가의 경제전문가에게 직접 확인해보라.

도널드 트럼프의 이민규제 조치로 한동안 위축됐던 유입 이민자 수는 2021년 중반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이민자들은 본토박이 미국인들에 비해 근로연령대의 인구비율이 높아 미국 경제가 직면한 숱한 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팬데믹과 연결된 공급망 교란은 건설과 식품가공과 같은 중요 산업분야의 일손부족이 부분적인 원인으로 꼽혔다. 물가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공급망 문제는 2021년 중반이후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이 건설과 식품가공분야의 일손 공백을 채우면서 서서히 정상을 회복했다.

또한 이민자들은 감자수확, 주택건설과 노인 간병 등 저임금과 허리가 휘는 중노동으로 현지출생 미국인들이 외면하는 일자리를 도맡았고, 국내 숙련노동자 부족으로 남아도는 첨단산업분야의 빈자리도 채워주었다. 게다가 이민자는 토박이 미국인에 비해 창업률이 높아 고용창출에도 적잖이 기여한다.

현지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고임금 전문직 직종에 적절한 자격조건을 갖춘 인력이 모자라 고용주들이 애를 끓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기서도 해결사는 이민자다. 실제로 많은 첨단기업들은 외국에서 유치한 ‘두뇌’로 부족한 고숙련 노동수요를 충족시킨다.

이민의 필요성과 긍정적 효과는 산술적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부머들은 줄지어 은퇴하고 있고 미국의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이민이 아니면 미국의 근로연령 인구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조만간 축소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 팬데믹 이후 기록된 고용 순성장은 외국태생 근로자들에 의해 작성됐다. 이민자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고용인구는 코비드 이전에 비해 전혀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방면에서 다양한 글로벌 인재들을 유치하는 우리의 능력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그러나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선동적인 정치인들은 반이민의 깃발을 흔들며 반이민 정서를 자극한다. 이들과 손잡은 우익 논객과 정치 공작원들은 이민의 순기능을 반영한 고무적인 경제 통계에 칙칙한 잿빛 물감을 덧칠하려 든다.

실제로 폭스 뉴스는 바이드노믹스를 ‘이민자 고용박람회’로 규정했다. 공화당과 보조를 맞추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파운데이션도 “지금의 경제는 미국인 노동자들을 소외시켰다”며 필자가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사실, 즉 이민자들이 신규 고용성장을 주도한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제로-섬이 아니고, 미국인들 역시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사실, (대학 졸업과 직장 은퇴 사이의 연령대인 25-54세의) ‘취업적령기’에 속한 미국태생 근로자의 비율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전체적인 그림은 부머들이 은퇴하면서 남긴 일자리와 기업들이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를 미국태생 노동자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지난 몇 년 사이에 현지 출생 미국인들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전적으로 부머 세대의 고령화 탓이다. 이를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인력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그룹으로 간주되는 틴에이저와 장애인들의 취업률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개선됐다. 이 역시 미국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인력수요가 크게 늘어났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역설적으로 전국에서 이민정책과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지역과 심각한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성년자 노동 제한을 완화하려 시도하는 지역이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현재의 이민시스템에 하자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조건 이민을 규제하고 이민문호를 축소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이민 찬반진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법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일부 국가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오히려 부러워한다. 은퇴하는 부머들을 대체하거나 이들을 돌보아줄 재능있는 사람들 및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 사업과 추진력으로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활발한 외부 인력 유입은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의 강점이다. 새로운 재능의 유입은 숱한 경제 전문가들이 제시했던 경기침체 전망을 뒤집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구감소로 경제 성장에 도전을 받고 있는 아시아와 그 이외 지역의 경쟁자들을 물리치는데 기여했다. 현재 미국 경제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이전에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까지 뛰어넘으며 강력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만약 현재의 이민추세가 그대로 지속된다면 앞으로 수년간 우리는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의회예산국(CBO)은 향후 10개년 국내총생산 전망을 7조 달러 가량 상향조정하면서 이민자들이 주도하는 고용성장을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이민자들은 우리가 안고 있는 장기적인 재정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이민자들은 세금을 납부하지만 토박이 미국인들에 비해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를 포함한 사회복지 프로그램 혜택은 적게 받는다. 수혜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우파’는 탐욕스럽고 정부의 무상지원에 의존하는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와 귀중한 세금을 동시에 훔쳐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적으로 이민자들은 국내 일자리와 세수를 늘려준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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