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땅을 알차게 활용해 지은 지상 5층 건물. 주변 주택 분위기에 맞춰 벽돌과 벽돌타일로 마감했다. [김영수 건축사진작가 제공]
부엌을 중심으로 구성한 3층.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김영수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에서 채광이 가장 좋은 5층 거실. 건축주는 “이 집이 따뜻한 집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용수 건축사진작가 제공]
사진 작업 환경에 맞춘 구조 설계에 공을 들인 2층 사진관. [김영수 건축사진작가 제공]
서울 홍대, 연남동 같은 이름난 상권을 옆구리에 낀 조용한 동네 마포구 성산동. 수십 년 된 주택과 분위기 좋은 카페, 소규모 작업실이 제자리에 담담하게 자리한 한복판에 동네를 꼭 닮은 5층 건물(대지면적 89.90㎡, 연면적 179.64㎡)이 서 있다. 다른 건물들 사이 30평(약 99㎡)이 채 안 되는 땅에 솟은 건물엔 2대 가족이 산다. 권성훈(59) 정은주(58) 부부, 둘째 아들 권영범(33) 강푸름(33) 부부, 그리고 막내아들까지 다섯 식구다.
건물을 짓기 전엔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오래된 아파트에 함께 살았다. 변화가 찾아온 건 영범씨의 결혼 얘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결혼 후 영범씨 부부가 살 집과 부부가 함께 운영할 사진 스튜디오를 위한 공간이 필요했던 터에 가족들은 아파트를 처분하고 스튜디오를 갖춘 건물을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은주씨의 말. “아들과 며느리의 사진 스튜디오에 두 가구 살림집을 얹은 꼬마빌딩을 생각한 거죠. 경제적 가치를 따지며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집이란 형편대로 만들어가는 거 아니겠어요. 시간이 흘러 집의 가치가 어떻게 될지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이 더 중요했죠."
운명의 땅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할 목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찾다 보니 가격 부담이 컸어요. 주말마다 서울 동서남북을 훑으며 30군데 넘게 땅을 봤어요. 열심히 땅을 찾아다니다 2년 만에 운 좋게 발견한 곳이 이곳입니다. 번화가와 가까운데 조용해서 오래 살 수 있겠다 싶었죠."
도심의 활기찬 기운과 보금자리의 아늑함이 스미는 건물을 꿈꾸며 땅을 샀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좁은 면적이 문제였다. 부부 두 쌍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주거 공간, 막내아들이 묵을 방, 사진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까지, 넓지 않은 대지에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만만치 않았다. 가족은 평소 눈여겨보던 김성철(가도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협소한 대지에 도시 주택을 설계한 경험이 많은 김 소장은 1, 2층을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할 근생 공간으로, 3층부터 5층까지를 주거 공간으로 만들되 4층은 공간을 나눠쓰는 형태를 제안했다. “어느 공간을 얼마만큼 열어 부피감을 만드느냐가 관건이었죠. 수직 공간의 깊이를 살리는 데 주력했어요."
본격적인 주거 공간이 펼쳐지는 3층에 들어서니 김 소장의 야심작인 층고 높은 거실이 나온다.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열린 구조로 실제 평수보다 훨씬 넓어 보여 한 번 놀란다. 반층이 더해진 높은 천장과 통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두 번 놀란다.
하루 중 영범·푸름 부부가 가장 오래 머무르고 손님들과 주로 소통하는 공간도 이곳. “처음에는 면적을 포기하고 층고를 높이겠다는 소장님의 제안에 반신반의했어요. 안 그래도 좁은 집에서 방 하나를 온전히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어지는 건축가의 설명.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면적만 생각하는데 집을 넓어 보이게 만드는 진짜 비결은 ‘체적'이에요. 공간에 깊이감을 주고 과감하게 창을 내서 풍경을 들이면 시야가 트여 개방감이 극대화되죠."
3.5층에 들어선 침실은 침대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최소화된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 층고를 반층 끌어 올린 덕분에 침실 맞은편 공간은 자연스럽게 뚫린 공간이 됐다. 침실에는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을 뒀는데 시야가 건너편 통창까지 이어진다. 침대에 누워서 보이는 풍경은 매일 감탄을 자아낸다. 김 소장은 “침실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여러 창을 통과한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게 했다"며 “시각적으로 여러 겹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의도했는데 아파트와 다른 주택만의 묘미"라고 했다.
■높은 옥상에서 누리는 자연
그 위로는 성훈·은주 부부의 시간이 흐른다. 계단을 한참 올라야 나오는 4.5층과 5층 공간이 부부와 미혼인 막내아들이 사는 집이다. 주변 건물보다 높아 시야가 트인 장점을 활용해 통창과 코너창을 내서 바깥 풍경을 끌어들였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확장되기 때문에 창의 방향을 세심하게 조율했어요.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주택가라는 한계가 있지만 다채로운 풍경을 누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죠."
집의 안락한 느낌을 더하려 맨 꼭대기에 다락도 만들었다. 4.5평 남짓의 다락엔 거실로 향하는 창을 내고 외부 테라스까지 연결해 내외부가 확장되는 효과를 누린다. 김 소장은 “막혀 있으면서도 뚫린 공간은 공간에 유연함을 더한다"며 “그런 공간이 결국 집의 인상을 결정하고 재미를 준다"고 말했다.
아늑한 다락과 사방이 트인 옥상정원은 모든 가족이 편애하는 공간이지만 평생 자기만의 공간을 꿈꿨던 성훈씨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됐다. 오밀조밀한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집이지만 옥상에서만큼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은주씨는 이곳에서 화초를 가꾼다. “아파트 살 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행복이에요. 계절을 집 안에 그대로 담을 수 있지요. 봄이면 새순이,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낙엽까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절대 몰라요."
두 부부와 함께 사는 20대 막내아들도 빼놓을 수 없는 수혜자다. 집의 현관과 5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 4.5층에 방 하나를 들였는데 오롯이 그를 위한 공간이다. 창문 하나에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공간이지만 방주인의 만족도가 누구보다 높다고. 은주씨는 “‘아파트 키즈'로 자라다 보니 평생 층간소음이나 가족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한다"며 “아들이 늘 바깥으로 돌았는데 이 집에 살면서 ‘집돌이'가 다 됐다"고 전했다.
■따로 또 같이 누리는 행복
대가족이 모여 살며 일과 여가를 함께할 수 있는 주택 생활을 꿈꾼다면 도심의 상가주택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시 인프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입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취향 저격 공간에 더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질서와 배려가 있다면 말이다. “생애 주기에 따라 가족이 분리되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데, 한 가족이 각자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영범씨의 어머니 은주씨가 화답했다.
“아들 부부와 산다고 하면 걱정부터 쏟아내는 사람도 있는데 살아보니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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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