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V에 등돌리는 민주당계 운전자들

2024-04-17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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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EV)가 민주당 쪽에 속한 소비자들의 외면을 사고 있다. 진보적 성향을 지닌 소비자들이 EV 산업 성장을 위해 반드시 공략해야 할 ‘저항집단’으로 떠오른 셈이다. 지난해 실시된 소비자 여론조사에서 새 차를 살 경우 EV 구입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한 민주당 진영 소비자들의 비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전반적으로 EV 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 올해 첫 3개월 사이의 EV 판매 성장률도 둔화됐다. 1분기 판매는 다소 증가했지만 매출성장률은 빠르게 치고 올라간 나머지 다른 차종의 수치를 따라잡지 못했다.

불안감을 느낀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은 다투어 EV 투자 축소에 나섰다. 지난 한 해 동안 EV 시장에서 47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포드는 최근 2개의 EV 신종 모델 출시를 연기했다. 제너럴 모터스도 지난 가을 전기 픽업 차량 제2 생산공장의 건설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애플 또한 10년간 공들였던 전기차 개발계획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EV가 고전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전기차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자동차업체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반면 마진은 줄어들었다. 소비자 수요도 냉각됐다. 신제품을 남보다 한발 앞서 구매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른바 ‘얼리 어답터’ 그룹이 멋진 장난감에 열광하면서 EV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새 차를 구입하려는 일반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피 튀기는 마켓팅 전을 펼쳐야 한다. EV 셀러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전기차 구입 경험이 없는 평범한 소비자들은 이들의 부름에 화답하지 않는다.

지난 월요일 공개된 갤럽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EV 보유자 수는 늘어났지만, 전기차 구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들의 비중 또한 2023년의 41%에서 현재 48%로 증가했다. 다시 말해 미국인의 절반가량이 EV 구입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2024년 첫 3개월로 시간대를 좁힌 유거브의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갤럽이 지지정당별로 조사 대상자들을 나누어 분석한 결과, 이렇듯 부정적인 추세를 이끌어가는 집단은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민주당계 소비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공화당계 소비자들 역시 EV 구입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EV를 보유하고 있거나 구입을 고려중이라고 답한 공화당계 소비자들의 비중은 1년 전에 비해 3-4%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민주당계 소비자들의 EV 보유율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높아졌다. 그러나 현재 EV를 갖고 있지 않은 민주당 성향 소비자들 가운데 “앞으로 EV를 절대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1년 전에 비해 무려 10% 포인트 증가했다. 이들 외에 정치적으로 무당파에 속한 소비자들과 대학졸업자 및 저소득자들 사이에서도 EV 구입의사가 약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서베이 수치를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번처럼 조사 대상을 하부집단으로 조각조각 분리한 서베이 자료는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전반적인 추세가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EV를 직접 운전하는 친구와 직장 동료들의 평가를 통해 ‘미래의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호감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바이든 대통령의 야심찬 기후변화 관련법이 제정된 이후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EV 모델이 제한돼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줄어든 것이 전기차 열기를 떨어뜨리는데 손을 보탰는지 모른다.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나오기 전에 하버드대 연구원인 엘레인 버크버그는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26개 전기차 모델을 도표로 작성했다. 지금은 그 가운데 오직 12개 모델만이 최고액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일부 모델은 특정 버전에만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국세청(IRA)이 가격, 차량제조 원산지 등과 관련해 EV 세액공제에 엄격하고 제한적인 기준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어들의 소득제한 규정까지 덤으로 얹혀졌다. 물론 한시적으로 이들을 피해가는 일부 임시 출구를 열어 놓았지만 이런저런 규제와 제한이 잠재적 바이어들의 구매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V 구입자들이 세액공제혜택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정부의 노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제는 또 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테슬라 브랜드를 환경보호에 열심인 진보주의자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차종으로 바꾸어놓았다. (테슬라의 올해 1분기 신규 차량 판매실적은 하강곡선을 그렸다.) 개솔린 가격을 낮추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은 서민들 사이에 인기가 높지만 전기차 구입에 따른 이점을 희석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슈는 ‘주행거리 불안’을 키우는 충전 기반시설 부족이다.

이 부문에서 정부의 인센티브는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 2021년 양당합의로 의회를 통과한 기반시설 구축법은 EV 충전소 설치를 위해 75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지금까지 신설된 충전소는 단 7개소뿐이다. 그나마 기존의 충전시설은 잦은 정전과 긴 대기시간으로 운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GM의 전 수석 경제전문가인 벅버그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나와 있는 충전기의 신뢰성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충전기를 사용해본 운전자들이 긍정적인 입소문을 퍼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소비자들의 EV 선택을 가속화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전기차 생산을 의무화하거나 배기가스 배출에 대한 죄책감을 조장하는 것 보다 간편하고, 저렴하며 믿고 운전할 수 있는 EV 차량을 만드는 것이다. 오직 경제적 논리에 근거해 필자는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전기충전기술과 환경 친화적인 재활용기술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믿는다. 이건 ‘가정’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문제다. 우리의 정책 선택은 이같은 전환을 가속화하느냐, 아니면 늦추느냐를 포함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공화당은 이를 가속화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그리고 민주당은 어떻게 가속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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