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문제와 관련해 주도권을 되찾은 하원 공화당이 갈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다. 지난 수개월 아니 수십년(?) 동안 공화당은 국경 강화를 선거철의 단골 이슈로 내걸었다. 그러나 막상 밥상을 차릴 기회가 주어지자 공화당은 멍하니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어렵사리 양당합의로 마련한 상원안은 지난 일요일 저녁을 기해 사실상 폐기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하고자 했던 주요 조치들이 포함된 상원 합의안은 보수주의자들의 ‘국경 정책 버킷 리스트’라 부를 만했다. 먼저 유산된 상원 이민개혁안에 담긴 주요 조항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 국경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추가 군비지원을 제공한다.
- 이민법원의 난민자격 심사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해 부적격자를 신속히 가려냄으로써 이들이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불법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이민제도의 허점을 틀어막는다.
- 국경 검문소와 세관의 인력을 각각 1,500명과 1,200명씩 증원한다.
- 펜타닐 및 밀반입품 탐지 기술 개발에 과감히 투자한다.
- 타이틀 42조와 유사한 조항을 되살려 대통령에게 망명시스템을 봉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에게는 행여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지 자신을 꼬집어보아야 할 만큼 반가운 법안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379쪽 분량의 법안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법안의 처리를 위한 본회의 상정 가능성을 배제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법안 내용을 충분히 검토했다”며 “본회의 상정은 시간낭비”라고 주장했다. 그의 사전에 “Yes”라는 단어는 없는 듯 보인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법안이 존슨의 말대로 “하원 도착즉시 사망”으로 마무리된 것과 관련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아마도 존슨 일파는 2024년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민문제를 그대로 끌고 가길 원할 것이다. 여기엔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꼽히는 트럼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오직 본인만이 남부 국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지 않으려는 트럼프가 하원의 충복들을 동원해 상원이 제기한 해법을 뭉개버렸다는 해석은 거의 정설로 통한다.
아마도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지난해 그들이 승인한 H.R.2 법안의 의회통과를 위해 버티기에 들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전략에는 두 가지 문제가 따른다. 첫째, H.R.2는 밀입국 차단을 위한 예산을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 설사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의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다 하더라도 H.R.2 법제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상원 공화당 대표인 미치 매코널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이 법안은 60표 이상의 찬성표를 확보해야 상원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아마도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이민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이미 법원에서 위법판정을 받은 조치들을 집행하라고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한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상원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미국은 “하루 5,000명의 불법이민자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알면서도 거짓정보를 흘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법안의 실제 취지는 그게 아니다. 5,000이라는 수치는 현재 상황에 관한 것이다. 최근에 그랬듯 난민신청 건수가 5,000건을 넘어선 경우 정부 당국은 국경을 넘어와 제출하는 난민신청을 단 한건도 추가로 접수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하원 공화당은 민주당의 구미에 맞는 법안은 그들이 검토하기에는 사실상 지나치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양당 합의안 작성에 참여한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을 벌주려 한다. 상원 공화당 협상팀을 이끈 제임스 랭포드 의원도 징계 대상자 가운데 한 명이다.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지만 랭포드는 난데없이 등 뒤에서 칼을 맞는 셈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실패로 끝난 2017년의 오바마의료개혁법 폐기 시도를 재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공화당은 선거철마다 미국의 의료체제를 개혁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권한이 주어지자 그들에겐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의 개혁 논의는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관련법안을 단 한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실패로 끝난 오바마케어 폐기 시도와 달리 상원의 국경 강화안은 그리 나쁘지 않다. 필자는 상원 합의안에 담긴 망명관련 조항과 타이틀 42처럼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이론적으로, 양당의 지지를 끌어내기에 충분한 유용한 조항으로 가득 차있다.
예를 들면 국경 안정에 필요한 자원을 대거 투입한다는 조항이 그렇다. 상원의 양당 합의안은 미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조력자들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미 충분히 신원검증을 받은 아프간 인들은 미국 입국한 후 난민법의 틈바구니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또한 상원안은 부모와 떨어진 채 미국으로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미성년자들이 법적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백악관과의 협상에 참여한 상원의원들은 구멍 난 국경에 관한 숱한 거짓주장을 반박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하지만 어렵게 마련한 합의안의 장점과 이점을 입증하거나 부정하는 책임은 오롯이 하원의장에게 돌아가야 한다. 존슨 하원의장은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공화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숱한 조치를 현 시점에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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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