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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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피는 꽃

2024-02-12 (월) 백인경 버클리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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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다. 나의 직원이 카페를 닫고 뒷정리를 하면서 진한 향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우린 아마도 손님이 향수병을 엎지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향수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우린 매장을 샅샅이 살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참 묘하다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서있던 나무 꼭대기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향기는 그 꽃에서 나는 거였다.

그 나무는 카페 오픈 하고부터 10년도 넘게 한자리에 서있었다. 키가 커서 거의 천정에 닿을 듯하고 잎이 무성해서, 꼭대기 잎 사이에서 핀 꽃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 나무가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바로 인터넷으로 나무에 대해서 알아봤다.

이 식물은 7년에서 10년은 지나야 꽃이 핀다고 한다. 그것도 어쩌다 빛, 습도, 온도의 모든 조건이 잘 어우러져야 핀다. 대부분 피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깊은 숙성을 거쳐서인지, 한번 피면 그 향기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그것도 낮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때부터 꽃잎이 열려서, 밤에 진동하는 향기에 흠뻑 취하게 한다. 옥수수잎과 비슷해서 ‘corn plant’라고 하고 ‘행운목’이라고도 한다. 어렵사리 꽃이 피어서 그런지 꽃말은 ‘약속을 실행하다’, ‘행운, 행복’ 등이다. 실내의 공기 정화까지 해주는, 꼭 옆에 두고 싶은 식물이다.


꽃이 피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핀 꽃, 은은한 하얀빛으로 전혀 화려하지 않은 꽃.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정성을 들였길래 이토록 고혹적인 향을 품을 수 있을까! 긴 세월의 인고와 자신의 때를 위한 기다림이 느껴져 마음이 시큰했다. 그러면서도 온 마음을 다했다는 듯이, 수줍게 미소 짓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당당해 보였다. 가슴 뭉클한 경이로운 감동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을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면서 같이 걸어간다. 하지만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도전과 변화를 겪으며 자신만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간다. 고비 고비마다 실패의 어려움과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을 꽃 피우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면,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장을 하고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피어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호박꽃이나 감자꽃이 화려하지 않지만 그 맺는 결실이 실하고, 행운목처럼 수수해도 향기가 진한 것처럼, 어떻게 우열을 가릴 수가 있을까. 따라서 자신의 꽃은 언제 어떠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날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속도와 시간을 믿고 바르게 노력하면 자신만의 향기를 머금고 피어날 것이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꽃을 피우는 우리이기에 나눔과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풍성한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딱 떨어지는 정답도 없고 더더구나 결론도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과정이기에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피지 못했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겠다.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뜨거운 폭염아래 여름을 견디고 찬 서리 내린 뒤에야 고고하게 자태를 나타내는 국화꽃처럼, 조급하지 않으며 자신의 세월을 견뎌낸 행운목처럼, 늦게 피는 꽃이 더 향기가 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백인경 버클리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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