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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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이야기

2024-02-08 (목) 서옥자 한미국가 조찬기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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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움켜잡기에 익숙해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다. 원숭이가 캔디 병에 손을 집어넣어 캔디를 손에 잔뜩 쥐고 손을 빼려니 좁은 병 입구에 걸려 손을 뺄 수가 없다고 했다. 캔디만 놓으면 될 것을. 우리가 움켜쥔 것들은, 그리고 움켜쥐려고 하는 것들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보암직도, 먹음직도, 탐스러운 이생의 욕망들이다.

오늘 나는 오랜 세월 곁에서 지켜본, 나이 지긋한 어떤 분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머지않아 90세가 되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2, 30대 청년 같이 영육이 강건하신 분이다. 은퇴라는 단어 없이 이른 새벽을 깨우며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열심히 일하고 사는 분이다.

그는 50년 전 미국에 도착, 보통 한인 이민자처럼 여러 힘든 환경을 헤쳐 가며 개척의 삶을 살아왔다. 누구보다 밤낮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볼티모어 시내 흑인 지역에서 편의점 가게를 운영해왔다. 매일 새벽 4시 전에 기상, 교회 새벽예배를 마치고 곧 바로 가게로 간다. 주일 빼고는 함박눈이 오거나 비상 날씨가 몰아쳐도 쉬는 날이 없다. 그가 열심히 돈을 버는 데는 목적이 있다. 벌어서 남 주고 가난한 자와 나누는 것이다. 교회에서 장로로 임명하고자 했을 때도 본인이 타이틀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분이다.


수십 년 세월, 매월 첫째 토요일이면 본인이 준비한 음식들과 푸드 뱅크로부터 얻은 식료품을 챙겨 수백 개의 선물 꾸러미를 준비한다. 가난한 흑인동네에 도착하면 언제나 열심히 줄서서 그를 기다리는 흑인들에게 핫도그도 만들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전한다. 이름 그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역 현장이다.

어느 날 나도 동참해 준비한 선물 백들을 차례대로 나누어주는데 어느 아이가 물건을 받고 또 다시 왔다. 나는 왜 다시 받느냐고 안주었다. 아이는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가 시켰다고 한다. 정직하지 않음을 탓하며 내가 안주려 하자 곁에 서 있던 그 분이 “그냥 속아주고 줘”하며 인자하게 허허 웃으셨다. 그렇게 아량이 없는 내 자신에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게다가 대낮에도 술 냄새를 품기고 마약으로 비틀거리고 건네주는 선물 백도 손으로 받지를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흑인 도우는 사역을 하러 나갔다가 거꾸로 흑인을 혐오하는 시험대에 오르고 말았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동참하지 않았다. 나의 사랑과 관용의 한계인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그는 변함없이 그들을 껴안고, 보듬어주고, 베풀기를 지금까지도 계속한다.

한 번은 시내에서 어떤 미국 여자가 이 분의 차를 뒤에서 충돌했다. 당황한 그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며 다가오자 차 뒷부분이 파손되었는데도 됐다고 웃으며 그 여자를 그냥 보냈다. 나 같으면 운전자가 도망갈까봐 얼른 내려 사진부터 찍고, 운전면허증, 보험증 내놓으라고 안달했을 터인데. 또한 오래 전에 누가 돈을 꾸어서 갚지 않고 그냥 이사를 가버렸단다. 속상해하는 부인에게 “그냥 내버려두어. 그 사람들, 그 돈 갖고 잘 살면 됐잖아”로 끝을 맺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장사가 무척 잘 되었는데 근래에는 어렵다고 한다. 얼마 전에 마크 장 후원 행사에 그 분에게 도움을 부탁했더니 적지 않은 돈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요즘 힘드신 데 미안해했더니 그는 “그게 하나님 돈이지 내 돈인가” 한마디 내던지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다. “그렇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내 자신은 무슨 소유에 집착하고 있는지. 그가 떠난 자리에 추위를 가르고 달려온 바람 위로 푸르게 떨고 있는 겨울 하늘이 내게 미소를 지어 보낸다.

<서옥자 한미국가 조찬기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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