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다운 삶의 의미

2024-02-03 (토)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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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두번째로 눈이 많이 왔다. 밝고 깨끗해진 대지를 비추는 햇빛에 반사된 눈의 결정체가 은가루를 뿌린 양 반짝이며 눈부신 별세계에 온 듯하다. 눈 덮인 뒷마당에는 사슴인지 여우인지 모를 발자국이 희미하게 줄지어 있고 적막하도록 고요한 숲의 설경에 마음이 정화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세계를 찬양하고 있다. 짙은 밤색 점박이 날개를 가진 새가 짹짹이며 펜스에 앉았다가 날아가고 나도 뿌드득 뿌드득 눈길을 나선다.

차가운 바람이 영혼을 뜨겁게 달군다. 바람 날개를 타고 하얀 회오리를 일으키며 바람은 길을 잃은 채 뿌연 눈가루를 흩뿌리다가 한 뭉치 눈들을 나뭇가지에서 훑어내고 있다. 바람이 불면 삶의 의지가 샘솟는다. 나무며 집이며 바람이 세상을 스치는 소리…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에 체념하고 끌려 다니는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잿빛하늘에서 새벽부터 축복처럼 끊임없이 내리던 눈이 온 세계를 순식간에 덮다가 오후가 되니 하늘이 파랗게 변했다. 하늘만 파란 게 아니라 시간도 새롭게 쪽빛으로 물들어 새 길을 열어 보인다. 인간사회의 지저분하고 추한 모습을 구름에 담았다가 다 닦고 쓸어내서일까. 유난히 맑아진 하늘아래 햇빛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앙상히 서 있는 나무가지들을 품고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새해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희망의 선물이다. 새 몸과 새 마음과 생명으로 새로운 생각을 꿈꾸게 하신다. 소망이 있다면 남에게 보이는 인생이 아닌 나만의 인생을 찾고 싶은 것이다. 주위를 복되게 하고 더불어 사는 인생을 향해 자신을 준비시키고 싶다.

유대인으로 나치에 끌려가 강제 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오스트리아 태생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 영어명: 빅터 프랭크)이 있다. 신경학자이고 심리학자이며 Logos를 연구했던 그가 자신의 고유하고 유일한 삶의 의미를 어떻게 실현하고 살았나를 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 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책임을 지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역설한 것이다.

로고 테라피(의미치료)의 창시자인 그는 실존적 상담치료와 인본주의 심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의사이면서 철학자인 그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있는 목표를 위한 노력과 분투이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긴장을 푸는 게 아니라 성취되기를 원하며 기다리고 있는 잠재적 의미를 찾아 이끌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사정에도 항상 의미를 갖는다. 빅터 프랭크는 수용소에서 하루에 한 번씩 배급되는 물을 받아 반은 마시고 나머진 세수를 위해 남겼고 유리조각에 베이면서도 면도를 하며 결코 몸 씻기와 면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낙담이나 절망적인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줌으로 죽음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빅터 프랭크의 정신을 본받길 원한다. 비록 세월이 우리를 석양의 들녘으로 이끈다 해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거창하진 않아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서 즐겁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변에 아우라를 만들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해 본다.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선택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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