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The Breaking Ice) ★★★★(5개 만점)
▶ 감상성 자제하며 서정적이고 시적 서술
▶가족 얘기 통해 인간관계 중요성 일깨워
시아오와 나나와 하오펭(왼쪽 부터)이 겨울 산행에 나섰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변 자치구의 한 마을을 무대로 그려진 세 젊은 고독한 남녀들의 우정과 사랑과 정신적 방황 그리고 자아발견의 흑백 드라마로 질서정연한 이야기 서술보다는 무드에 치중한 아름다운 영화다.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자의 얘기와 이미지가 프랑스 누벨 바그의 대표적 감독 프랑솨 트뤼포의 ‘쥘르와 짐’(Jules et Jim)을 연상케 하는데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의 한국마을이 무대여서 한국어 대사가 많다.
한 겨울 눈에 싸인 외지에서 연결 지어지는 고립된 세 영혼의 애기가 겨울 공기처럼 투명하고 싸늘하기까지 한데 중국계 싱가포르 감독 앤소니 첸(극본 겸)은 감상성을 자제해가며 서정적이요 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상처 입고 방황하는 세 젊은 영혼들의 짧은 만남을 통한 임시 가족의 얘기를 통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결론이 수수께끼처럼 애매모호하게 맺어진다.
리 하오펭(하오란 리우)은 샹하이에서 재정관계 일을 하는 우울한 표정의 청년인데 장백산 기슭에 있는 마을 얀지에서 열린 한국인 결혼식에 참석차 온다. 그런데 비싼 시계를 차고 도시 청년의 헤어스타일을 한 하오펭의 셀폰에 정신과 병원으로부터 방문 날짜를 지키라는 통보가 계속해 전달된다.
이 마을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버스 안내원으로 일하는 나나(동유 조우)는 관광객들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기계처럼 일하는 아름다운 여자로 과거 피겨스케이트 유망주였다. 그의 체념 한 듯한 표정이 안쓰럽다. 이 버스에 하오펭이 타면서 그와 나나가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맺게 된다. 셀폰을 분실해 궁지에 몰린 하오펭을 나나가 동정해 둘이 가까워지면서 하오펭은 어느 듯 나나를 연모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나나에 대한 감정표시가 아주 어수룩하다.
나나의 버스가 조선족 마을에 도착하면서 여기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상고머리를 한 청년 한 시아오(추시아오 쿠)가 소개되는데 시아오와 나나는 친구이면서 채 연인의 관계에까진 이르지 못한 사이다. 그런데 시아오는 자기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포로와도 같은 처지로 나나를 연모하나 나나는 이를 외면 한다.
나나가 하오펭을 시아오에게 소개하면서 세 고립된 영혼의 소유자들이 동료애와 감정으로 연결되면서 추운 겨울 서로들에게서 위안과 온기를 찾게 된다. 이들은 함께 술 마시고 얘기하고 노래방에 들러 노래 부르고 또 책방에 들어가 책을 훔치면서 아이들처럼 즐긴다. 그리고 겨울 산행에 나서 압록강 가에서 북한에 대해 고함도 질러보고 장백산 천지도 가보려고 하나 날씨 탓에 포기한다.
사람들로는 복작이지만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인간관계의 절대적 필요성을 서두르지 않고 시적 리듬으로 얘기한 고운 영화로 세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보기 좋고 특히 겨울 산과 강과 마을을 아름답게 담은 촬영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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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