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본사 전경.<로이터>
매일 아침을 구글로 시작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데스크톱 컴퓨터를 켜고 크롬 브라우저를 연다. 브라우저의 홈페이지는 구글이다. 회사 업무와 별도로 쓰는 개인용 이메일은 지메일(Gmail)이다. 실리콘밸리 근무를 시작하면서 마련한 휴대전화는 구글의 픽셀6다. 한국에는 발매가 되지 않았기에 현지에서 일하는 동안 사용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구글의 엄청난 팬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떨어져 살 수 없다.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빅테크의 서비스에 예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가능한 한 일정 시간은 테크놀로지와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걸어서 출근하다가 문득 구글의 서비스센터는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사무실에 도착해 구글로 구글의 서비스센터를 검색한다. 구글은 자사 소개 홈페이지(about.google.com)에 대표 연락처와 주소를 공개해 놓았다. 해당 주소는 구글의 본사인 마운틴뷰의 1600 앰피씨어터 파크웨이(1600 Amphitheatre Parkway)다. 구글에서 근무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흔히 구글플렉스(Googleplex)라 불리는 본사 내부를 방문할 수 있었다. 5개의 장면을 통해 빅테크를 대표하는 구글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김욱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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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짜 점심: 무한한 자유와 책임
구글의 점심은 공짜다. 직원들 뿐 아니라 직원이 초대하는 외부인도 제한 없이 구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처음부터 구글이 최고급의 음식을 무제한 제공하는 기업으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 초기만 해도 구글 사무실에는 맥도날드나 크리스피크림 도너츠밖에 없었다. 구글의 직원이 45명으로 늘어난 시절, 현재 구글의 기업문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주방장으로 합류한다. 훗날 구글의 비공식 ‘문화부장관’이라 불린 찰리 아이어스(Charlie Ayers)가 1999년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어스가 구글의 셰프로 뽑히기 전까지 구글은 25명 이상의 후보들에게 퇴짜를 놓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45명 시절에 확립한 문화를 직원이 4만 명이 넘는 현시점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곳곳에 커피, 음료수, 아이스크림이 놓여 있었다. 한결같이 가격이 꽤 나가는 브랜드 상품이다. 데이비드 바이스가 쓴 <구글 스토리>에 따르면 “왜 구글에서 일하기 좋은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열의 아홉이 음식을 꼽았다”고 한다. 구글의 최고급 공짜 점심은 매우 상징적이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업무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현직 엔지니어에 따르면 빡빡한 출퇴근 개념도 없다고 한다. 다만 그에 따른 무서운 책임도 직원의 몫이다. 매니저가 주기적으로 성과를 관리하며 결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해고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노동 유연성이 큰 미국 근무환경에서 구글의 공짜 점심은 무한한 자유와 책임을 의미한다.
2. 네 가지 색깔의 밴드: 다양성
구글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렀다. 깔끔한 화장실의 세면대에는 손 세정제, 손 소독제, 핸드크림 등이 놓여 있었다. 특이하게 상처에 붙이는 밴드도 구비되어 있었다. 네 가지 색깔 밴드를 보면서 구글이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이라면 살구색 밴드 하나를 배치하려는 생각에서 그치기 십상이다. 구글은 피부색 차이를 고려해 네 가지 선택권을 마련해 놓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답게 다양성에 기반해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23년 구글은 자사 테크 분야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인종을 다섯으로 구분하고 있다. 아시아계, 흑인계, 히스패닉계, 미국 원주민계, 백인계다. 비율은 아시아계가 50.9%로 가장 많고 백인계가 42.2%로 뒤를 잇고 있다. 다음은 히스패닉계 6.2%, 흑인계 4.1%, 미국 원주민계 0.7% 순이다. 구글은 인종과 문화적 다양성에 민감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네 가지 색깔 밴드와 같이 캠퍼스 곳곳에 정교하게 배치한 장치를 통해서 말이다.
3. 자전거: 수평성
식사를 하고 소화도 할 겸 구글 캠퍼스를 산책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알록달록한 자전거다. 구글은 직원들이 넓은 캠퍼스를 이동할 수 있도록 캠퍼스 곳곳에 자전거를 배치해 놓았다. 이름하여 지바이크(G-Bike)다. 구글의 자전거는 화려한 디자인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자연스런 상호작용을 독려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지진 위험과 규제 탓도 있지만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은 높은 지가에도 건물을 낮고 넓게 짓는 방식을 선호한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커다란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동부나 한국이었다면 어떨까. 뉴욕 맨해튼은 단단한 암반으로 된 섬이다. 좁은 땅을 최대로 활용하려다 보니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형태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뉴욕 맨해튼 회사 안에 자전거를 배치하려는 시도는 여러모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우선 고층 빌딩 안에 사무실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 회사는 자전거로 이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층별로 구분된 수직적 공간에 필요한 이동수단은 엘리베이터다. 수평으로 이동하는 자전거와 엘리베이터는 양립할 수 없다. 낮고 넓게 형성된 실리콘밸리의 캠퍼스는 캘리포니아의 빅테크 기업이 추구하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의미한다. 특히 구글은 이를 캠퍼스 곳곳에 비치된 무료 자전거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 캠퍼스 전시품: 예술성
구글플렉스 건물 여기저기에는 소소한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 안에 조금 넓은 공간이 나온다 싶으면 어김없이 예술 작품을 구성해 놓았다. 처음 마주한 작품은 뒷바퀴를 제거한 채 비스듬히 원형으로 배치한 구글 자전거였다. 전시품을 보면서 필자가 받은 느낌은 구글도 결국 사람이 만든 회사라는 것이었다. 해당 작품은 구글을 창업한 사람들도,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지구(Mother Earth)에서 왔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의도로 읽혔다. 사무 공간 바로 옆에 배치한 예술품을 통해서 구글이 지향하는 바를 구성원들에게 환기하고 방문객들에게 홍보하려는 목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떠오르는 작은 구조물이 나왔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기하하적인 무늬는 얼핏 추상예술 구조물로 보였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미리 축하하려는 구글식 크리스마스 트리로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구글은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사무실 안에서 진행하고 있다. 마치 구글은 “여기가 우리의 일터인 동시에 우리의 놀이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일을 놀이로 만드는 수단은 곳곳에 배치한 예술 작품이다.
구글은 자신들의 사명을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활동’으로 규정한다. 이는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추구하는 바와 적확히 일치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죽음을 앞두고 “나는 훌륭한 예술가와 훌륭한 엔지니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글플렉스를 거닐며 구글은 자신들을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예술가로 정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악해지지 않고도(Don’t be evil)’ 예술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글은 넌지시 드러내고 있었다.
5. 마음챙김: 지속가능성
구글 캠퍼스 방문을 마무리하며 눈에 들어온 공간은 건강을 위한 시설이다. 피트니스센터뿐 아니라 작은 병원과 마사지실, 명상실을 마련해 놓았다. 구글이 최고의 인재를 뽑기 위한 세밀하게 설계한 채용정책은 널리 알려졌다. 캠퍼스를 소개해준 엔지니어도 구글에 입사하는 과정에서 여섯 번이나 인터뷰를 봤다고 했다. 구글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합류한 직원들이 최고 수준의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 건강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UC버클리의 인류학 교수 캐롤린 첸은 자신의 저서 <먹고 기도하고 코딩하라>에서 “빅테크 기업은 이제 캠퍼스 안에서 종교적 기능까지 포괄하려는 동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빅테크에 다니는 구성원이 회사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화하려는 움직임을 구글에서 가늠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구글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영입된 인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구글은 이를 위해 직원들의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챙기는 일에도 한껏 힘을 쏟고 있었다. 결국 구글은 항시 최고의 인재로 구성된 회사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오며: 구글 기업문화의 재해석
구글 방문을 마무리하며 한국의 젊은 창업자들을 떠올렸다. 구글도 시작할 때는 작은 회사였다.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1998년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한 차고에서 구글을 창업했다. 25년이 지나 구글을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구글 캠퍼스를 거닐면서 구글이 회사를 키우며 소중히 여긴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무한한 자유와 책임, 다양성, 수평성, 예술성, 지속가능성 등 다섯 가지다. 그 중에서도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한한 자유와 책임이다.
흔히들 회사를 세우기는 어렵지 않으나 회사를 키우고 유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구글을 방문하고 가장 놀란 점은 회사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커졌음에도 처음 도입했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원이 45명인 시절 제공하던 공짜 점심을 직원 수가 4만 명이 넘은 지금까지 최고급으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구글의 기업 문화를 대변하는 다섯 가지 가치는 우리나라의 젊은 창업자들도 회사를 세우고 키워나가면서 탑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구글을 흉내내는 시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실정에 맞게 갈고닦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