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준철 시인의 한 문장의 생각

2024-01-15 (월) 김준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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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들어왔어”

애석하게도 2024년을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선균 배우의 공식 유작이 된 영화 ‘잠’의 한
대사이다.
2023년 9월 개봉한 유재선 감독, 이선균, 정유미 주연의 영화로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편
현수와 그를 예전 모습으로 돌리려는 아내 수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서스펜스 등에 속하는데 그 갈래가 관객들 마다 갈리는 편이라
딱히 어느 하나를 고르기도 또는 고르지 않기도 애매하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에 가장 유니크한 공포”였다고 극찬을 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영화는 관객을 몫을 많이 배려하고 있다. 관객이 영화 안에서 자신 만의 공포를, 스릴러를,
미스터리를 만들고 찾고 즐겨야 한다.

영화는 행복한 신혼생활 중 남편이 잠에서 깨어서 중얼거리는 말을 아내가 듣는 시점에서
시작하게 된다.
“누가 들어왔어”

이 말은 상당한 긴장감으로 들린다. 집 안에 침입자가 있다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남편 현수 안에
무언가 다른 게 들어와 있다는 말로도 해석되기 떄문 이다.
그리고 영화는 내내 그 ‘누가’ 누구인지, 무엇 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간섭이나 침입으로 인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곳에 놓이기도 하고 힘든 역경 속에 처하기도 한다.
고인이 된 이선균 배우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결국 그의 삶은 필자가 보기에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 의 힘에 의해 원치 않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전 생애를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 귀한 결실을 맺으며 승승장구하던 한 인간이 그
정점에서 그러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금만 더 단단한 영혼을 가지고 현재의 어둠을 버티고 견뎌 주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2024년을 맞았다.
한 배우의 생을 통해 필자는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다.

우리의 생을, 자신의 생을 누군가 의 간섭이나 방해로 결정되게 놔두어서는 안된다. 굴복하거나
도망치는 것 역시 옳은 결정이 아닐 것이다.
다만 조금 늦어지거나 멈춰 서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단코 삶의 끈을
놓는 간단하지만 간단치 않은 선택을 생각조차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만날 2024년 새해는 여러 얼굴로 변함없이 시간이라는 굴레 위를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든, 늦은 선택이든, 여전히 변함없는 삶의 무게이든, 어제보다 더 지독한 아픔이든
담담하게 버티며 또 하나의 날을 살아내길 소망 해 본다.

<김준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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