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밑에 들려온 한국의 한 유명 배우의 죽음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대중의 인기와 함께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아온 톱스타였기에 사망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평소 가정적이고 단정한 이미지를 지녔던 그는 3개월 전 내사 단계에 있던 마약투약 혐의가 흘러나온 이후 경찰수사와 언론 보도에 시달려왔다.
경찰은 그를 세 차례나 공개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웠다. 여러 번의 마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고 두 차례 공개 소환 조사에서 아무런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또 다시 그를 불러 18시간이나 조사를 벌였다. 그는 범행의 고의성을 줄곧 부인했으며 사망 하루 전에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런 경찰의 행태에 대해 ‘망신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말살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이어졌다. 혐의가 명백하다면 공인인 연예인을 소환하는 게 문제는 아니겠지만 세 차례나 불렀음에도 경찰의 수사에 진전이 없었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찰의 도 넘은 ‘망신주기 수사’에 장단을 맞춘 것은 언론들이었다. 그는 규명된 혐의가 단 하나도 없는 단계에서 이미 범죄자로 확정돼 갔으며 삶은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한 공영방송국이 그의 혐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적인 통화내용을 메인 뉴스시간에 내보내는 상식 이하의 양태를 보였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도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한 것 아니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공영방송이 이런 정도니 일부 유튜브 채널들의 ‘인격살인’에 가까운 행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극우 유튜브 채널은 사망 전날 그의 육성이 담긴 녹취를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공개했다. 마지막 조사를 마치고 나온 후 진실규명 의지를 보였던 그를 무너뜨린 것은 이런 일부 언론과 유튜브 채널들의 행태가 안겨준 극도의 모멸감이었을 것이다.
모멸감은 나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으로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을 파괴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시킨다. 자존감을 훼손당한 사람은 자신이나 남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런 충동은 종종 스스로를 자해하거나 타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미국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온 표현은 “나를 깔보았다”(disrespected)였다는 것이다. 한 범죄자는 살인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은 ‘자존감’이었다고 대답했다.
구성원들이 느끼는 모멸감의 정도와 이런 감정이 유발되는 구조는 사회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사회학자들은 한국은 모멸구조가 대단히 넓고도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서열의식이 아직까지 철저하고 온갖 형태의 갑질이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멸의 구조화를 가장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인터넷 댓글창이다. 한국의 댓글들을 분석해보면 악플과 선플이 4대1 정도의 비율로 나타난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선플의 비율이 더 높다. 단순히 네티즌들의 성향으로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품위사회’라는 주제를 연구해온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길릿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모욕하지 않고, 시스템이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문명화된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품위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만한 조건에 결코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배우의 죽음에 대해 사회 전체에 책임이 있는 ‘사회적 살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모멸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사회에서는 인간다운 삶을살기도, 또 행복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