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탭댄스가 두려운 우익 평론가들

2023-12-27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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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질 바이든 영부인은 흥겨운 연말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도랜스 댄스’ 무용단의 짤막한 탭 댄스 공연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백악관이 제작한 비디오는 듀크 엘링턴과 빌리 스트레이혼이 재즈로 편곡한 ‘호두까기 인형’ 배경음악에 맞춰 도랜스 댄스 무용수들이 이스트윙에서 펼친 경쾌한 탭 댄스를 보여준다.

기묘한 머리장식에 반짝이 무용복을 차려입은 댄서들은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특유의 발장단으로 백악관을 들썩이게 만들고, 생쥐 대왕과 어린 여주인공 클라라 등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하는 친숙한 캐릭터들은 건강한 에너지를 단비처럼 뿌리며 이스트윙 홀에 줄지어 늘어선 크리스마스트리를 흠뻑 적신다. 비디오의 처음과 끝은 도랜스 무용단의 공동 안무가이자 흑인 댄서인 조세트 위건이 ‘슈가 럼 체리’(Sugar Rum Cherry) 음악에 맞춰 선보인 익살스럽고 유려한 춤사위로 장식된다.

공연 비디오는 시종 건전하고 발랄한 생기를 뿜어낸다. 도랜스 댄스의 오랜 광팬인 필자는 2분짜리 동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며 댄스광인 친구들과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아니다. 방대한 우익 ‘미디어 우주’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부 유색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G-등급 공연을 두고 폭스뉴스의 방송진행자인 로라 잉그램은 ‘몰지각한 진보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기괴한 바이든 드라마’라고 꼬집었다. 그녀에 따르면 문제의 비디오는 “대중의 정서를 해치고”, “국기를 불태우는 자들과 미국 혐오론자들”의 구미를 돋우게끔 디자인됐다. 잉그램은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클래식인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도랜스 댄스의 해석과 관련해 “미국의 전통과 연결된 모든 것을 극좌파의 눈을 통해 재해석하고 재창조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한 후 “무용단의 공연은 이 나라의 기독교인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미국인 전체를 향해 치켜든 가운데 손가락”이라고 주장했다.

뉴스맥스의 진행자인 에릭 볼링은 “멋대가리 없는 변형”과 “과도한 사회적 각성”으로 충만한 소품이라고 평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보좌관이었던 스티븐 밀러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페더럴리스트는 백악관이 공개한 비디오는 “역겨움 그 자체”라며 “성탄절 축제에 급진적 마르크스주의를 끼워 넣으려는 바이든의 의도가 엿 보인다”고 말했다.

재즈 춤동작이 이토록 거센 반발을 불러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이번 도랜스 무용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기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원작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차이콥스키가 만든 고전 발레의 플롯은 이보다 훨씬 기이하다. ‘성탄절을 망치려는 무리’가 백악관에서 방자하게 날뛰는 광경이 제아무리 눈에 설다 해도 원작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리지널 호두까기 인형 발레극에는 마법에 걸린 인형들과 누더기 옷을 걸치고 커다란 스커트 아래 어린이들을 숨긴 장대한 남성, 캔디 복장을 한 러시아 코사크인들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무시무시한 쥐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환각제에 취한 듯한 몽환여행에 가깝다.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점은 보수반동주의자들이 호두까기 인형의 도랜스 무용단 버전을 물고 늘어지는 진짜 이유다. 놀랍게도 이들 중 일부는 탭댄스 공연에 흑인 무용수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뉴스맥스의 방송진행자 롭 슈미트는 “꼭 다양성, 공정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DEI 비디오를 찍어야만 했느냐”며 볼멘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나 대다수는 인종차별 투쟁을 격려하고 흑인 아티스트를 띄우는 내용으로 도배된 무용단 웹사이트에 반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도랜스 댄스 창립자이자 맥아더 지니어스 그랜트 수상자인 미셸 도랜스는 웹사이트에 올린 인사말에서 “흑인 문화의 기념비이자 조직적인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맞선 끝없는 투쟁사인 동시에 백인들에 의한 문화 도용의 시초인 탭 댄스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라고 강조한다. 대다수 독자들의 짐작과 달리 도랜스는 백인 여성이다. 이쯤 되면 폭스뉴스 진행자들과 댄스를 속없는 비정치적 여흥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도랜스의 선언은 다소 ‘과격’하게 들릴만하다.

사실 탭은 이 나라의 굴곡진 인종주의 역사를 반영하는 독특한 미국 문화다. 사학자들은 탭 댄스의 기원을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 및 그들의 후손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조우했던 시기에서 찾는다. 현대 탭 댄스는 자발적 이민과 강요된 이주를 통해 형성된 두 인종그룹의 확연히 다른 전통에서 나왔다. 이들은 리드미컬한 댄스를 여흥과 저항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탭은 지그, 민스트럴 쇼, 보드빌,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 흑백분리시기의 할리웃 영화 등을 거치며 변이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무대를 독식한 백인 아티스트들은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탭은 고통과 불의 속에서 자란 대표적 예술형태이고, 탭 원조인 흑인 댄서들에게 주어진 대가 역시 불의와 고통이다.


도랜스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전설적인 탭 댄서였던 다이앤 워커 등 이 방면의 숱한 흑인 선구자보다 이들의 어깨를 딛고 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이 같은 자각이 자신의 탭댄스 창작극인 호두까기 인형에 도랜스가 의도적으로 ‘포용의 정신’을 불어넣은 이유다. 도랜스는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나는 (흑인들의) 저항과 자기표현의 예술적 산물인 탭 댄스가 즐거움과 사회변화를 가져올 강력한 운송수단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백악관 연말축제 비디오를 둘러싼 우익의 문화적 우려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일반적으로 탭은 겉보기와 달리 반체제적인 속성을 지닌다. 특히 백악관의 올해 연말 공연의 특징은 흑인 댄서들이 흑인 안무가가 공동으로 창작하고 해석한 작품을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탄생한 예술적 매개물을 이용해 흑인 노예들에 의해 지어진 글로벌 파워의 본거지에서 연출했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욱 미국적인 성탄절 스토리도 드물 터이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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