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글을 쓸때 주로 볼펜을 이용했고 좀 중요한 글을 쓸 때는 만년필도 사용했었다. 특히 대학 논문을 쓸때 만년필로 한자 한자를 또박또박 정성들여 원고지에 썼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물론 그 당시는 컴퓨터가 대중화 되기 전이었다.
그때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았던 필기 도구가 파커 만년필이었다. 만년필을 손에 쥐면 튜브 속의 잉크가 만년필 펜촉으로부터 흘러나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쓰고자 하는 모습의 글씨가 되고, 쓰고자 하는 내용의 글자가 되어 원고지를 채워간다. 논문을 위시하여 지인들에게 절기 카드를 보내거나 위문 편지를 쓰거나 사연있는 일기를 쓸 때도
만년필을 사용하곤 했다.
글을 쓰다보면 잉크가 모두 소모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시금 튜브에 잉크를 채워야 한다. 따라서 긴 글을 쓸때는 잉크 병도 같이 준비했다. 헌데 어떤 때에는 잉크 병이 잘 열리지 않는다. 힘을 가해 열려해도 잘 안린다. 그것은 병 속의 잉크가 실수로 흘러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뚜껑을 아주 단단히 잠그어서다. 그래도 사람들은 잉크 병을 다시 못 열 정도로 뚜껑을 아주 꽉 잠그진 않는다. 자신이 열던 누가 열던 다음에 뚜껑을 다시 열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로 병을 잠근다. 잉크 뚜껑이 잘 안 열리는 더 큰 이유는 뚜껑을 닫은 지 오래 되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굳어진 잉크 뚜껑은 힘센 자가 세게 힘주어 비틀어도 생각보다 안 열린다. 한달 두달, 일년 이년이 지나는 사이 뚜껑이 굳어버린채 완전히 닫혀버린 것이다.
굳어진 잉크 병을 보면서 인간관계의 한면을 느낀 적이 있었다. 사람사이에 어떤 문제로던 마음이 굳어버리면 대화와 소통의 창이 닫히고 관계가 멈추게 된다. 해서 인간관계는 굳어져 서로에 대한 문이 닫히기 전에 꼭 풀고 해결해야 한다. 관계의 굳어짐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고, 먼저 친절히 대하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섬기는 것, 즉 먼저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 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막히거나 닫힌 것이 없어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는 단지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영생의 문제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영적 질식사에 이른다. 성경은 주님과 불통한 자들을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 말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오직 세상의 이치, 땅의 원리만을 따라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으려면 경건연습에 전념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 찬송과 주의 일에의 헌신이 주님과의 관계를 깊고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경건연습은 지금, 삶의 자리에서 실행해야 한다.
‘상황봐서 내일 해야지’ 라며 미루는 순간 주님과의 관계는 그만치 더욱 굳어지며 더욱 완고하게 닫힌다.
잉크 병이 안 열리는 또 다른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손 문제 때문이다. 잉크 병 뚜껑이 굳어져 귿게 닫혀 있어도 계속해 힘주어 열기를 시도하면 결국은 열리게 된다. 헌데 자신의 손에 땀이 많이 차 있으면 뚜껑을 돌린 손이 미끌어진다. 그럴 때는 손수건이나 작은 천으로 뚜껑을 잡고 돌리면 뚜껑이 열린다. 우리들은 때때로 상대방이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다고 오해할 때가 있다. 실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이 소심하거나 긴장해서 상대방을 그렇다고 여겨서이다. 이럴때 상대방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해 보면 의외로 큰 문제없이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지내온 지인들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속이 넓고 통이 큰 사람일 수 있다. 우리들은 상대방에 대해 필요이상 경계한 채 그를 너무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손에 베어있는 땀을 닦아 내고 담백하지만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보면 상대방도 웃으며 손을 잡아 줄 것이다. 누군가가 잉크병 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는 헤어 드라이기를 가지고 살살 주위에 열을 가해주면 손쉽게 열 수 있다고도 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따뜻한 온기가 언제나 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온기가 성령께서 뎁혀 주시는 온기이면 더 좋겠다. 찬양과 기도를 통해, 말씀과 예배를 통해 성령의 뜨거운 열기가 우리 모두를 감싸 주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