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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신

2023-12-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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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법고창신

▶ 진월 스님/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고성통신
어느덧 12월, 금년도 황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달력은 오늘이 대설 즉, 눈이 많이 내리는 시절인데, 이곳 베이지역은 우기가 되어 비가 제법 올 것을 예상해 봅니다. 한 보름 지나면 밤이 가장 긴 동지이니, 그 다음날부터 실제로 새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시중에는 벌써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크루즈 등 성탄절 장식이 보이고, 새해맞이를 아울러 “해피 할러데이 씨즌” 인사 문구가 퍼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지구촌 저쪽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들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 세계평화를 해치는 상황이니 모두 조속한 종전과 공존공생의 필요가 사무치는 실정입니다. 새해에는 인간 세상에 화해의 바람이 불고 협조의 물결이 흐르며, 자연환경에도 기후위기와 재난 해소 등 지구건강 회복의 희망이 실현되는 계기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 인사들은 이즈음 ‘송구영신’ 즉,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자주 사용해 옵니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상황에서, 어둡고 언짢은 것들은 보내거나 잊으며 밝고 즐거운 것들을 맞이하여, 건전하고 긍정적인 생활의 변화를 추구하자는 표현이겠지요. 여기저기 각종 단체와 조직 등에서 ‘송년회’ 또는 ‘망년회’ 모임도 있고, 새로운 의욕을 다짐하는 다양한 신년출범 ‘단합대회’도 열리는 줄 압니다. 이곳 베이지역의 독보적인 언론기관인 한국일보도 금년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의 발전과 도약을 준비하며, 독자 여러분들도 각자 나름 송구영신의 의미에 합당하게 보람 큰 시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불자님들에게는 부처님 가피 속에 수행과 공덕성취의 원력을 키우고 실천하는 기쁨이 있기를 축원하며, 다른 종교 교우님들에게도 각각의 전통에 따른 은혜를 입고 영적 성숙의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산승은 리버모아 산위의 고성선원에서 겨울 안거를 해온지 어언 일곱 해, 이번 철에는 체력도 약해지고 하여 의료인들의 권유에 따라 저지대 시내로 피한생활을 시도해 봅니다. 마린카운티에 있는 고령자건노당(시니어헬시에이징캠퍼스)의 조촐한 다락방 스튜디오를 염가 임대하여 시중은거(어번리트릿)로 이 겨울철을 지내보려 합니다. 차제에 참고할 논거는 이른바, ‘법고창신’ 즉,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든다는 글월인데, 산승의 입장에서는 옛 수행전통을 주어진 현실 상황에 맞게 적용하려는 노력이라고 봅니다. 불교의 시작과 전파과정인 인도로부터 중국과 한국을 거쳐 온 수천 년 된 수행과 전법의 전통정신을 오늘날 이곳 미국 베이지역에서 어떻게 형편에 맞게 주체적으로 실현해 볼 것인지가 상황적 과제입니다. 대중과 더불어 산다면 함께 의논해 보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에서는 나름 전통 가르침에 준거하여 소신껏 최선을 찾아 시도해 볼 뿐이지요. 전통 사찰이나 선원 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한문주련이 보입니다. “불신충만어법계(부처님 몸은 온누리에 가득하사) 보현일체중생전(모든 생명 앞에 널리 나투시네) 수연부감미부주(비록 인연 따라 두루하지 않음 없지만) 이항처차보리좌(항상 깨침의 자리에 머무시네).” 이는 <화엄경> 법문으로서, 여래의 세 가지 몸 가운데 근본인 법신 즉, 진리의 몸은 우주에 가득하여 아니 계신 곳 없이 모든 생명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근본자리에서 떠나지 않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산승은 이를 육신 또는 화신은 때에 따라 특정한 곳에 머물지라도, 법신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변함이 없다는 진리로 생각합니다. 대승불교의 근본 요지와 궁극적 목표는 법신을 체득하여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선비들은 ‘요산요수(산과 물을 즐김)’를 이상으로 말해왔지요. <논어>에서처럼 갖추어 말하면,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하고(인자요산),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지자요수)고 합니다. 산승은 고성선원의 산위 아란야와 물가 스튜디오에서, 요산요수를 함께 누려 볼 작정입니다. 산이 멀고 높아 찾아오기 어려웠던 시내 분들과의 상담도 인연 따라 가져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벗님들 두루 송구영신과 법고창신의 활기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성선원 북루에서, 대설절에, 진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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