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벌목·식재 선순환…일본의 산 ‘목재를 생산하는 들판’

2023-09-20 (수) 12:00:00 글=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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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 임업’ 일본 미야자키 가보니…

▶ “벼 수확하고 이듬해 또 심듯…일본 수요 42% 담당 비결” 조림 기술 발전…목재량 늘고 한국과 달리 벌채 반감 적어
ha당 64m 달하는 임도 밀도…이동 쉽고 관광산업도 도움

6일 일본 규슈 남동쪽 미야자키시에서 남서쪽으로 15km가량 떨어진 한 국유림을 찾았다. 대로를 벗어나 4륜 자동차를 타고 숲 사이로 난 임도()와 임시 작업로를 5분 남짓 오르자, 너른 터가 나타났다. 규슈에서 유명한 삼(스기)나무 벌채 현장이다. 한쪽엔 수확한 목재를 산 아래로 실어낼 특수차량(포워더)들이 대기하고, 그 옆에선 티라노사우루스 주둥이를 닮은 장치를 단 굴착기(프로세서) 서너 대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프로세서는 나무젓가락 다발을 풀어놓은 듯, 와르르 넘어져 있는 길쭉길쭉한 삼나무들을 하나씩 물어 올려 착착 처리하는 중이었다. 앞서 나무 베는 장비가 훑고 지나간 터다.

‘드르르르륵.’ 나무를 가로로 집어 물 은 프로세서가 목재를 왼쪽으로 밀어 내면서 가지치기를 하더니, 이내 숨겨놓 았던 기계톱을 아래로 끄집어내려 싹둑 잘랐다. ‘위이이잉.’ 길이는 일정했다. 50년 동안 자랐다는, 길이 20m가 족히 넘는 삼나무 한 그루는 1분도 안 돼 A·B 등급의 목재, 가지가 많은 상층부는 등급 외목재 등으로 해체돼 옆에 쌓였다.

■일본의 산은 목재생산 ‘들판’


주식회사 마츠오카임산의 마스다스구루 총무팀장은 “정부로부터 작년에 5,500만엔(약 5억 원)에 수확권을 낙찰받았다”며 “임야 2필지 12.87㏊면적의 1만6,200그루가 수확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를 부피로 환산하면 1만275㎥에 이른다. ㎥당 산지 가격(1만6,100엔, 약 14만5,000원)을 감안하면 약 15억 원어치에 해당하는 목재다.

수 확은 11월까지 이어지며, 베어낸 자리에는 내년 봄 어린 삼나무가 식재된다. 미야자키의 산림면적 비율은 76%로 일본 전체 평균(68%)보다 높고, 인공림 비율 (57%)도 일본 평균(41%)보다 높은 대표적인 임업지역이다.

목재 수확 현장을 함께 찾은 미야자키대 산림환경학과의 사쿠라이 린 교수는 “들판에 벼를 심고 수확한 뒤 이듬해 또 심고 수확하는 것처럼, 산에 나무를 심고, 벌기령에 베어내는 일본의 산은 목재를 생산하는 일종의 들판”이라며 “일본 내 목재 수요 2,300만㎥ 중 절반 가까운 42% 의 목재를 자급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목재 자급률은 독일(53%)과 미국(71%) 등과 비교하면 낮다. 그러나 일본과 비슷한 산림면적 비율(63%)을 가진 한국 자급율(15%)의 세 배에 가깝다. 산림청 관계자는 “올해 50주년을 맞은 국토녹화 사업으로 산이 푸르게 바뀌는 등 한국도 이제는 베어내 쓸 수 있는 목재가 제법 된다”며 “그러나 현실적인 여러 요인으로 일본처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목재 수입액은 7조 원이다.

■녹화된 한국 산 ‘열일 않는 산’

국내 임업단체와 산림청에 따르면 가 장 큰 문제는 목재를 수확하는 일(벌목)에 대한 국민인식이다.‘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조림사업 결과, 녹화에는 큰 성공을 거뒀 지만, 성장한 그 목재의 활용과 그 필요 성까지 공감하는 국민이 많지 않아 벌목에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이나 용기가 나무나 종이로 바뀌면 사람들은 ‘친환경적’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나무를 수확하는 장면엔 ‘불법’ 딱지를 갖다 붙이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60, 70년대 달 표면 같던 한국 산은 나무 양이 크게 늘었다. 국립산림과학 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당 임목 축적량은 165㎥에 이른다. 1972년(11㎥/㏊)과 비교하면 무려 15배 많아졌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렇게 나무 양이 많아졌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쓸만한 나무가 많지 않고, 쓸만한 나무도 수확·운반 장비의 접근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 위해 일하는 산, ‘혈관’ 필요

일본 규슈 지역의 남부 미야자키에서 북부 후쿠오카에 이르는 방대한 산림은 한국의 그것과 분명 달랐다. 미야자키시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80㎞가량 떨어진 산골 마을 모로츠카 마을의 전 망대에 올라서자 눈 앞에 펼쳐진 산은 거대한 바둑판 같았다. 한국의 산이 단일색의 수묵화라면 이곳은 형상은 산이되, 1만7,821㏊ 면적의 산림은 다양한 색깔과 무늬로 채워졌다.

모로츠카읍의 마쓰무라 키미오 건설과장은 “삼나무 특성상 50년가량 키운 뒤 수확하는데, 일정 면적을 매년 수확하고, 그 자리를 순차적으로 재조림 하면서 나타난 시차 작업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흉측하게 보여도 그렇게 수확한 나무로 마을 주민들이 생 활을 영위하고, 최근엔 도시 청년들까지 이 산골 마을을 찾아 자리를 잡는 등 소멸 위기 극복에도 기여한다는 이야기에 ‘바둑판 산’은 달리보였다. 사쿠라이 교수는 “주민 1,400여 명이 2만㏊에 이르는 산에서 임업에 종사할 수 있는 건 차량과 각종 기계 장비가 이동할 수 있도록 임도가 사람의 혈관처 럼 뻗어, 일본에서도 가장 높은 임도 밀도(㏊당 64m) 덕분”이고 말했다.

<글=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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