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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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인가 절멸인가

2023-07-14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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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지역 한 골짜기에서는 ‘뜬금없이’ 비틀즈 노래가 울려 퍼지곤 했다. 그곳은 1972년부터 국제 고인류 화석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곳 중 하나. 탐사를 주도한 3명의 고인류학자들 중 미국인 도널드 조핸슨 박사 팀이 비틀즈를 좋아했다. 탐사대원들은 작업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오면 테이프리코더로 ‘하늘의 루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들으며 피로를 풀었다.

조핸슨 팀의 탐사성과는 대단했다. 당시로서는 가장 오래된 인류조상의 유골을 상당히 온전한 상태로 발굴해냈다. 350만년 전에 살았을 화석의 주인공은 사랑니와 좌골의 형태로 볼 때 10대 여성. 탐사팀은 ‘루시’라고 이름 붙였다. 고인류 화석 중 가장 유명한 바로 그 ‘루시’이다.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아파르 지역(afarensis)에서 발견된 남방(Australo) 유인원(pithecus)이라는 뜻이다.

루시의 등장은 인류의 진화 연구에 큰 획을 긋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전 발견된 유인원 화석 종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 있었다. 바로 직립보행이었다. 작은 키, 짧은 다리, 작은 두뇌 등 루시는 침팬지에 가까웠다. 침팬지처럼 주로 나무에 매달려 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퇴골과 무릎의 모양을 볼 때 루시는 최소한 가끔씩 두 발로 걸었던 것이 확실했다.


네발로 이동하던 루시와 동무들은 어떤 이유로 일어서서 두발로 걷기 시작했을까? 도구를 들기 편해서, 나무 높이 달린 과일을 따기 쉬워서 등 고생물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아울러 주목할 만한 가설은 지표면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같은 때 하루 종일 바닥에 엎드려 있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더 푹푹 찌겠는가. 일어서면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발산하기 쉬울 뿐 아니라 솔솔 부는 바람도 맞을 수 있다.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케빈 헌트 인류학 교수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100만년 정도의 유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직립보행으로 진화했다. 그 첫 단계가 루시의 시점이다. 당시 동부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를 겪었다. 기후가 고온건조하게 바뀌면서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삼림지대가 되더니 다시 광활한 대초원, 사바나로 바뀌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환경이 바뀌는 동안 열기를 피하기 위해 영장류가 일어서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두 번째 단계는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똑바로 선 사람) 등장시기. 현생인류와 비슷하게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며 체형이 홀쭉해지면서 호모 에렉투스는 열 발산이 더욱 쉬워졌다. 그에 더해진 또 하나의 혁신적 진화가 땀샘이다. 아프리카 열대지방에서 고온은 아사를 의미했다. 너무 더워 몸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냥을 못하니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땀샘이란 일종의 스프링클러 시스템. 몸이 뜨거워지면 땀이 나와 피부에 물을 뿌려줌으로써 체온이 조절되고 활동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몸에서 털이 없어지면서 인류의 조상은 고온에도 버티는 탁월한 사냥꾼이 되었다. 불이나 도구 사용 못지않게 중요한 진화의 선물, 적응의 산물들이다.

10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미국의 남부와 서부를 달구고 있다. 고온이 이렇게 장기간 계속되기는 현대 역사상 처음이라고 국립기상국은 밝혔다. 2년 전에는, 더위라고는 모르던 오리건 워싱턴 등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 폭염이 닥쳐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기온은 무려 121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기후재앙은 이미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 잡았고 홍수 토네이도 허리케인 가뭄 등 모든 자연재해를 초래하는 근본요소는 고온이다.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니 갖가지 기상이변들이 일어나고 있다.

루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여러 차례 기후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200년 전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전자가 자연발생적이라면 후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 전자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진행되었다면 후자는 불과 수십년 사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콜럼비아 대학 지구환경학과 교수로 기후변화 연구의 선구자였던 월러스 브로커 박사는 20년 전 이런 말을 했다. “대기 중에 화석연료를 뿜어내는 것은 용을 찌르는 것과 같다. 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모른다.”

경고에도 불구,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은 가속도로 늘었고 용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후전문가들은 지구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조만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예를 들면 기온이 120도 130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다. 심장질환 등 지병이 있는 사람부터 목숨을 잃게 된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 우리 후손들을 죽게 만들 것인가, 적응해서 살아남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자연적 기후변화 속에서 진화로 인류가 적자생존 했다면, 인공적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사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도시인구를 교외로 분산하고 거리에 나무를 심는 등 답은 나와 있다. 단, 시간이 많지 않다. 용이 너무 많이 화가 나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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