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유병 걸린 남편과 덩달아 미쳐가는 아내…정유미·이선균 호흡
▶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돼 현지 공개
영화 ‘잠’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잠든 남편이 갑자기 손톱을 세워 자기 얼굴을 마구 긁는다. 다음 날 보니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다.
어떤 날엔 자다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진다. 저녁거리로 사둔 소고기와 생선을 날것으로 씹어 먹는 중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어도 구역질을 참기가 힘들다.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갑자기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려 해 간신히 끌어내렸다. 곧 아이가 태어난다.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21일(현지시간)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잠'은 자는 동안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편 현수(이선균 분)를 고치기 위해 분투하는 아내 수진(정유미)의 이야기다. 몽유병을 앓는 당사자 현수가 아닌, 남편과 밤마다 한 침대에 누워야 하는 수진이 겪는 공포와 그가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과정을 그렸다.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신인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이날 칸 에스파스 미라마 극장에서 열린 현지 시사회에서는 유 감독과 주연 배우들에게 관객의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상영 후 영화에 대한 호평도 많았다.
극중 수진은 단역 배우를 전전하는 남편을 타박하기는커녕 기를 살려주는 보기 드문 아내다. 현수가 몽유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고 호기롭게 말할 정도다. 혼자서 고시원에서 지내겠다는 현수를 말리는 것도 수진이다. 부부라면, 가족이라면 같이 위기를 해쳐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부부는 병원부터 찾아 약을 처방받는다. 집안의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생활 습관도 뜯어고친다. 하지만 현수의 괴이한 행동은 갈수록 위험 수위를 높여간다. 갓 태어난 딸아이와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고 수진 역시 반쯤 미쳐가기 시작한다.
그는 급기야 과학이 아니라 샤머니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현수에게 귀신이 붙었다는 무당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부적을 침대 밑에 둔다. 자신이 붙여 왔다는 남자 귀신이 누군지 나름대로 추리해 답도 얻는다.
귀신이 단란한 자기 집을 망쳐놨다는 수진의 생각은 확증편향으로 굳어진다. 현수가 완치 소견을 받았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예전의 수진이라면 상상도 못 할 극단적인 일도 벌인다. 이제 구토를 하는 쪽은 현수다.
영화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집이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룻밤 악몽처럼 담아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는 95분 내내 미스터리의 힘을 유지한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포가 시작되는 대부분의 스릴러와는 달리, 안에서 비롯된 문제가 서서히 가족을 집어삼키는 전개도 새롭게 다가온다.
유 감독은 영화를 1∼3장으로 나눠 중간중간 이야기에 여백을 남겼다. 장과 장 사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결말 역시 관객이 받아들이기 나름으로 열어뒀다. 현수의 증상은 그저 몽유병이었을까 아니면 수진의 말대로 귀신의 짓이었을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