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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뉴스와 트럼프의 실착

2023-05-17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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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체 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기성 체제의 지도자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것이 폭스 뉴스와 도널드 트럼프 등 우파의 주요 지도자들이 직면한 전략적 도전이다.

거대한 힘이 자신을 노린다는 음모론의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미국의 피해 망상적 정치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30년 전 폭스 뉴스는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폭스 뉴스는 명망 높은 기성 언론사들에 대한 불신을 부추키면서 주가를 올렸다. 스스로를 약자의 위치에 선 스타트업(신생 창업사)으로 포장한 폭스는 엘리트 매체들이 장악한 언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반전의 기수를 자처했다.


말하자면 폭스는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진실을 찾아내 용기있게 전달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예언자”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 폭스의 이같은 승부수는 대체로 적중했다. 오늘날 폭스 뉴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로 자리매김했다. 폭스의 시청자 수는 MSNBC와 CNN의 시청자 합산치에 근접한다. 이제 적어도 언론계에서는 폭스 뉴스가 “주류”나 “엘리트”에 속하지 않는다고 정색을 해가며 주장하기 힘들어졌다. 한때 체제 밖의 “반문화”에 속했던 폭스뉴스가 의심의 여지없이 “기성 문화”의 영역으로 깊숙이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급증하는 회사의 지배력은 기존의 사업 모델을 한층 복잡한 상황 속으로 밀어넣었다. 주류 매체의 권위를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언론계 최고 포식자의 위치에 오른 폭스의 성공적인 사업 모델이 발빠른 추격전을 펼치는 신흥 언론사들에게 자신을 갈가리 찢어놓거나 최소한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비결을 일러준 셈이다.

원 아메리카 뉴스와 뉴스 맥스, 급성장 중인 팟캐스트와 라디오 쇼 등 새로운 “우파의 진정한 예언자”가 속속 등장하면서 이제 폭스는 자신이 선도했던 돈벌이 전략의 피해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신생 언론사들은 각각 “진실의 독점 공급자”를 자처하며 그들의 시청자나 청취자들을 상대로 폭스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지금 폭스 뉴스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고 있다. 현재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보수주의자들의 신뢰를 받는 기성 뉴스 매체로 남거나, 경쟁자들의 극단주의를 더욱 강력한 초극단주의로 찍어 누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전략 모두 위험부담이 따른다.

굴지 언론사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경우 폭스 전체의 브랜드가 훼손된다. 넉넉히 쌓아올린 권위에 매달릴수록 이런 종류의 힘을 불신하게끔 조건화된 폭스 시청자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

반면 피해 망상적이고 턱없는 보도를 계속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거운 법적 책임을 완전히 피해가지 못한다. 폭스 뉴스가 “대선 조작” 보도로 피해를 입은 투표기 제작업체 도미니온 보팅 시스템에게 7억 8,750만 달러의 배상 합의금을 지급한 것이 좋은 예에 속한다. 고소장은 폭스가 선거 조작 보도를 이어간 이유를 보여준다. 당시 폭스는 억지 보도를 중단할 경우 뉴스 맥스를 비롯한 기타 신생 매체들이 자신의 시청자들을 빨아들일까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계에서 폭스가 거둔 성공과 현재 직면한 어려움은 결코 유별난 일이 아니다.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 하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명망 높은 기관의 자체적인 실수 때문일 수도 있고, 제도권 인사들을 몰아내려는 야심만만한 외부인들의 협공이 가져온 결과일 수도 있다.

폭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린다. 정치판에서 흔히 나도는 이야기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한창이던 2010년, 공화당의 극보수 계판인 티파티가 당내 일부 “구 정치인들”을 밀어낸 사건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티파티 역시 프리덤 코커스 등 보다 급진적인 새로운 계파에 의해 축출됐다. 하지만 프리덤 코커스도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으면서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출마를 선언한 트럼프가 뜨는 이유 역시 공화당이 더 이상 신뢰할만한 정당이 아니라는 극보수층 유권자들의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인물이 자신이 책임지던 “국가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체제 후보로 재출마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공화당내 일부 인사들은 트럼프를 “제도권 후보”로 규정하며 그를 대체할 후보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밀고 있다.

분명히 좌파 진영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화한 언론”과 “중도좌파 정부” 연구원들이 대중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며 “유일하고도 진정한 좌파 예언자” 역할을 자임하는 언론과 갑작스레 조명을 받게 된 싱크탱크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구독 버튼을 눌러 엘리트들이 숨기고 있는 어두운 진실을 알아보라고 외친다.

이 역시 좌파 진영에서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통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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