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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정체성 초월한 왕게치 무투, 뉴뮤지엄 차지하다

2023-03-29 (수) 조상인 미술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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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최초의 케냐 출신 흑인 작가 뮤지엄 전시

▶ 흑인 정체성 넘어 성별·지역 초월의 하이브리드, 초기 콜라주 드로잉부터 최근 청동 조각까지

갓 쉰 살을 넘긴, 살아있는 작가가 뮤지엄 회고전을 여는 일은 매우 드문 ‘사건’이다. 하지만 현재 뉴 뮤지엄(New Museum)의 회고전 주인공인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에게는 예외적이다.

1972년생으로 작가로서는 젊은 축으로 여겨지는 그녀가 25년 세월동안 고민하며 만든 작업들은 고유의 단단한 서사를 가지며 뉴욕 미술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뉴 뮤지엄의 무투 회고전은 작가 최대 규모의 미술관 전시이자, 뉴욕에서 열린 케냐 출신 흑인 작가의 첫 번째 뮤지엄 개인전이다.

전시에 각별히 공을 들인 뉴 뮤지엄은 25년의 작업 여정이 담긴 100 여점의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각 층마다 선보였다. 출품작은 무투의 초기 콜라주 시리즈와 이를 토대로 발전한 다양한 미디엄의 회화, 영상, 조각 시리즈로 나뉜다. 보통 회고전을 여는 원로 작가에 비해 작업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무투가 큰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뭘까?


우선, 인종·성별·지역을 초월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서사(narrative)가 작품에 깃들어 있다. 단순히 흑인 작가로서 작품에 드러나는 인종적 정체성 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다양한 시간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상징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무투는 서로 다른 성질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적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이번 회고전 제목이 ‘왕게치 무투: 뒤얽힌 (Intertwined)’ 이듯, 뒤얽혀서 발생한 애매모호함은 더 폭넓은 동시대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보인다.

이는 무투가 초기 작업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제작한 콜라주 형식의 드로잉에서 잘 드러난다. 종이 조각들을 오려서 붙이는 콜라주 기법은 ‘돌연변이’와 ‘하이브리드’ 개념에 관심 많은 작가에게 적합했다.

드로잉 속 인체 형상은 인종과 성별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중립적이다. 아프리카 초원 속 동식물 이미지가 패션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오토바이·구두 등의 이미지와 뒤섞여 시각화됐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혼합된 콜라주 작업은 인종·젠더·지역을 초월한 현대판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킨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관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무투는 케냐의 나이로비와 미국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1990년대 초반 케냐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후 명문 미술대학인 쿠퍼 유니언과 예일대를 졸업했다. 10대 후반에 고국을 떠나 타국의 이민자로서 살아온 경험은 과거 16~19세기 노예무역으로 발생한 강제적인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다르게 ‘자발적’ 성격을 지닌다. 이것이 무투의 작업에서 미국 내 흑인 이민자들의 문화와 아프리카 대륙 내 전통적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발연된다. 이는 전시장 3·4층에 전시된 2010년대와 작품과 최근 조각에서 두드러진다.

2010년대 조각들의 재료는 흙, 조개껍데기, 산호초, 동물의 뿔과 뼈 등으로 아프리카 전통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형태적 측면에서는 인체의 과장이 특징인 전통적인 조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중립적 형태로서 동식물과 인간의 모습을 결합시키거나 초기 콜라주 작업 같은 ‘하이브리드’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조각의 외형은 미래지향적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원초적이고 오래된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재료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무투의 작품 앞에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의 기분을 느끼는 이유다.

최근작인 청동 조각은 더욱 미래적이다. 크기가 5m에 육박하는 ‘두 개의 카누(Two Canoe·2022)’는 외계 생명체 같은 형태에 땅에서 피어나는 식물 이미지가 결합돼 있다.

작가의 25년 여정은 ‘뒤얽힌’ 이미지들을 혼합하는 과정이라 해도 될 듯하다. 서로 다른 속성들이 ‘뒤얽힌’ 하이브리드 컨셉의 작품은 작가의 흑인 정체성을 넘어 페미니즘, 식민주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같은 더 포괄적인 담론을 이야기한다.

급변하는 동시대 사회에서 무투의 작업은 다양한 시간대로의 경험을 통해 ‘동시대’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조상인 미술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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