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재의 식사 - 식물성 대체유의 선구자, 오틀리의 면면
두유, 아몬드밀크, 귀리 음료, 오트밀 음료 등 대체유 제품이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진열돼 있다. [연합]
바야흐로 식물성유의 시대다. 전 세계를 휩쓴 식물성유의 열풍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다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국내에서는 우유회사들이 앞다투어 식물성 대체유를 출시하고 있다. 매일유업의 귀리유‘어메이징 오트’와 아몬드유‘아몬드브리즈’는 시장에서 선전 중이다. 2022년 9월 출시한 어메이징 오트는 오리지널과 언스위트 2종이 지금까지 1,800만 팩 판매돼 2,000만 팩 고지를 넘보고 있다. 아몬드브리즈의 지난해 매출도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동원F&B 또한 덴마크 브랜드로 그린 귀리와 아몬드유를, CJ제일제당도 사내 벤처를 통해 현미와 노란 완두콩 단백질의 대체유‘얼티브’를 개발 및 출시했다. 이밖에도 신세계푸드가 특허청에 ‘제로밀크’라는 상표를 출원해 시장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하게 달아오르고 있는 식물성 대체유 시장은 사실 선구자격 브랜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바로 스웨덴에서 탄생한 귀리유 브랜드 ‘오틀리(Oatly)’이다. 국내에는 2020년부터 ㈜동서가 수입하고 있는 오틀리는 사실 근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 하지만 현재 같은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2012년 식품업계 출신이 아닌 토니 피터슨이 새 최고경영자(CEO)로 합류하면서 오틀리를 식품 브랜드에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전환시켰고, 오늘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미지와 더불어 재기 발랄한 광고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했다. 그 결과 변방의 귀리유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진정한 삶의 선택으로 격상시킨 오틀리의 면면을 살펴보자.
스웨덴 룬트 대학의 식품공학 교수인 리카드 외스테는 1980년대부터 대체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환자를 위한 프로젝트였는데, 귀리유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귀리는 추운 기후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물을 아주 적게 소비하는 등 여러모로 자원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우유에 비해 매우 환경친화적인 작물이다.
실제로 귀리를 비롯한 식물성 대체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인터넷에서 가정 제조를 위한 레시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체로 귀리 등의 재료를 따뜻한 물에 불린 뒤 갈고 눈이 고운 체 등에 걸러서 만드는데, 안타깝게도 오틀리 같은 기성품의 맛은 전혀 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적절한 화학적 분해 공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제조 공정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에 바탕한 요리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버 등은 아밀레이스 같은 효소가 오틀리 같은 대체유맛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아밀레이스는 녹말을 가수분해해 당으로의 분해를 촉매하는 효소이다. 바로 우리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침에 존재하는 효소로, 학창시절 과학실험으로도 체험한 바 있다.
이처럼 효소로 귀리를 분해해 맛을 불어넣는 공정을 통해 세계 최초의 귀리유 오틀리가 탄생했고, 리카드는 동생인 비외른 외스테와 함께 브랜드를 출범한다. 소의 젖, 즉 우유가 크림의 양을 조절해 풍성함이 다른 제품군을 만들어 내는 데 착안해 오틀리는 식물성 기름인 카놀라유로 지방 함유량을 차별화했다. 오틀리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일단 시장에 연착륙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지만 오틀리가 좀 더 활개를 펼 수 있기를 바란 외스테 형제는 돌파구를 외부에서 찾기로 결심하고 앞서 언급한 토니 피터슨을 영입한다. 그는 2012, 2013년 2년간 브랜드의 리브랜딩과 전략적 리포지셔닝을 기획했는데, 오늘날 오틀리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데에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진 사분면을 바탕으로 한 방향 설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선함’과 ‘악함’, 그리고 ‘겁쟁이’와 ‘대담함’을 각각 하나의 축으로 삼아 이뤄진 사분면에서 피터슨은 오틀리가 선함과 대담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 오틀리를 이루는 전반적인 요소가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포장의 변화가 중요했다. 2012년까지 오틀리의 포장은 평범하다 못해 촌스러웠다. 애는 썼지만 ‘유제품을 함유하지 않았다’랄지 ‘우유와 두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등의 기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원래부터 오틀리를 알고 있었던 소비자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 접한 이가 포장만 보고서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한발 더 나아가 살 만큼의 위력은 가지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브랜드에 가장 중요한 광고에서도 오틀리는 자신들만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다.
도시에 일정 수준의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문구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광고를 게재한 것이다. 버스 정류장 등에 오틀리 귀리유의 패키지 이미지와 더불어 “당신이 이 포스터를 읽지 않았더래도 걱정 마시라, 누군가는 읽을 것이다”, “왜 귀리유가 그다지도 훌륭한지 설명할 기회를 또 놓쳤네!”, “진짜 이 광고를 읽었다고? 완전 성공!” 등의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게 찍어 게재한 것이다. 대상이 귀리유라는 점만 알리는 것 외에는 사실 제품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광고이지만,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는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이런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오틀리 마케팅의 정점은 2021년 미국 슈퍼볼 광고였다. 매년 2월 둘째 주에 열리는 미식축구리그(NFL)의 하프타임쇼의 단발성 광고는 빈번하게 화제가 되는데, 오틀리도 이를 노리고 무려 약 60억 원을 들여 30초의 시간을 따낸다. 그리고 CEO인 토니 피터슨이 직접 등장해 귀리에 둘러싸여, 직접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일반 우유 같지만, 인간(환경)을 위하는~ 젖소에서 얻는 게 아니야(It’s like milk, but made for humans~ Wow~ No Cow).” 그가 입은 티셔츠는 ‘나쁜 인공감미료 무첨가(No Artificial Badness)’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일간지 USA투데이는 아마추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오틀리의 광고를 슈퍼볼 사상 최악이라 꼽았지만 어쨌거나 오틀리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런 홍보를 등에 업고 오틀리는 유럽을 거쳐 2016년 미국에 상륙했다. 그리고 2021년 5월 20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는데, 5월 25일 종가 기준으로 21.2달러(약 2만4,000원)를 기록해 공모가인 17달러보다 근 25%에 오르는 상승률을 기록해 시가총액이 125억5,300만 달러(약 14조3,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처럼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던 오틀리의 미래는 현재 주춤하고 있다. 주가는 상장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해 현재 2.2달러대인 가운데,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파괴해 평판이 나쁜 사모펀드 블랙스톤으로부터 투자를 유치받아 선한 이미지에 먹칠을 당한 상황이다. 거기에 국내에서도 활발한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브랜드의 귀리유, 다른 식물로 만든 대체유가 약진 중이니 이 기세를 얼마나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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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