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복궁서 드디어 패션쇼… 의지의 구찌, 5월에 연다

2023-03-01 (수) 송주희 기자·신미진 기자·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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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6일‘경복궁 근정전’일대에서 개최 문화재청 심의서‘조건부 가결’로 통과돼

▶ 작년 11월 행사 부득이한 취소후 재추진 구찌, 경복궁 복원 후원 등 강력 의지 보여

지난해 개최 직전 취소됐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의 패션쇼가 5월 16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다. 구찌는‘과거와 현대의 교차점에서 미래를 이끄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경복궁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동시에 공간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구찌가 올해 서울 첫 플래그십 매장 오픈 25주년을 맞아 패션쇼 개최에 공을 크게 들인 것으로 알려져 이번에 공개될 새로운 콘셉트와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 차례 취소 후에도 ‘강력 의지’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문화재청 궁능문화재분과위원회는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경복궁 내 ‘구찌 패션쇼’의 장소 사용을 ‘조건부 가결’했다. 당초 사전 공지된 심의 사항 목록에는 패션쇼 개최 내용이 없었으나 이후 공개된 회의록에 ‘경복궁 내 구찌 패션쇼 장소 사용’ 안건이 추가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행사는 경복궁 근정전 일대에서 지난해 11월 1일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가 애도 기간의 뜻을 함께하고자 협의하에 연기됐다”며 “동일한 장소에서 진행하는 패션쇼로 경복궁을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의 승인으로 구찌는 5월 16일 오후 5시 30분부터 같은 날 오후 8시까지 경복궁 근정전 근정문 및 행각에서 행사를 연다. 지난해는 천문학과 별자리에서 영감을 받은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의 미공개 의상을 세계적인 수준의 천문학 연구가 이뤄진 경복궁에서 소개하는 콘셉트였지만 올해는 새로운 주제로 공간과 브랜드의 접점을 드러낼 계획이다. 구찌 측은 “경복궁의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패션쇼의 다양한 홍보 수단을 통해 국내외로 널리 알리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며 이번 패션쇼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새로운 콘셉트에 대해서는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패션쇼를 위해 구찌는 5월 6일부터 15일까지 행사 관련 시설물 설치 작업을 진행한다.

구찌는 패션쇼 성사를 위해 오랜 시간 문화재청에 취지와 계획을 설명하며 적극적인 설득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패션쇼를 추진했으나 청와대에서 촬영한 모 잡지사의 한복 화보가 왜색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불똥이 튀었다.

당시 문화재청이 “경복궁을 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지만 의도치 않게 정쟁화될 수 있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구찌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서 패션쇼를 진행했던 이력과 철저한 안전·보존 조치 계획을 전달해 ‘훼손 방지 및 역사 고증’ 등을 전제로 한 조건부 가결 결정을 받았으나 예상치 못한 참사로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

이번 패션쇼는 구찌가 매년 5~6월 최신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주요 국가의 명소에서 개최하는 ‘크루즈 패션쇼’로 진행될 예정이다.

구찌는 최근 전 세계의 다양한 유적과 문화 랜드마크에서 크루즈 패션쇼를 선보이며 단순히 옷을 소개하는 기존 패션쇼의 개념을 뛰어넘어 문화·미학적 서사와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2016년에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함께했고 2017년과 2019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 유적인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런웨이를 녹여냈다. ‘죽음과 사후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2019 크루즈 컬렉션은 2018년 프랑스 아를의 공동묘지이자 세계 문화유산인 ‘프롬나드 데 알리스캉’에서 열려 화제를 모았다.


앞서 취소된 경복궁 행사는 같은 해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크루즈 패션쇼 당시 내놓은 컬렉션에 일부 의상을 추가해 선보이는 자리였다. 구찌는 지난해 12월 ‘2023년 5월 15일 한국에서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를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구체적인 개최 장소는 추후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11월 행사 취소 직후부터 5월 크루즈 패션쇼를 염두에 두고 문화재청과 논의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구찌는 “한국이 역동적인 헤리티지·문화·창의성으로 전 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구찌 하우스의 핵심 가치를 잘 반영하고 있어 패션쇼의 개최지로 선정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 일정이 무산된 후에도 문화재청에 ‘향후 3년간 경복궁 보존 관리 및 활용 활동을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사회 공헌 활동 업무협약도 맺었다.

■경복궁 역사 고증 위한 조건

다만 이번 패션쇼 심의 통과도 이전과 같은 ‘조건부’다. 지난해 구찌 패션쇼의 경복궁 개최가 가결될 당시 위원회는 관계 전문가 자문을 받아 경복궁 역사 문화유산의 가치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실한 고증을 요청했다. 또한 상업성을 최대한 줄이며 공익적 측면, 지속 가능한 사회적 공헌 등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할 것’이라는 조건이 명시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시즌 테마가 ‘천체’였지만 올해는 다른 주제로 패션쇼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세부 내용은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위원회의 조건부 가결에 따라 내용의 적절성, 역사적 고증, 문화유산 훼손 방지, 유적지 관리 등에 대한 내용을 소위에서 협의·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위에서 반대 의견이 나올 경우 조건부 가결된 구찌 패션쇼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명품 소비 증가와 K팝을 중심으로 한 영향력 확대로 한국 시장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 있어 핵심 공략처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명품 시장 규모는 2018년 대비 30% 성장했다.

문화를 중심으로 한 K콘텐츠의 인기 속에 K팝 아이돌 멤버와 한국 인기 연예인을 브랜드 홍보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구찌는 최근 걸그룹 뉴진스 ‘하니’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송주희 기자·신미진 기자·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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