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단독인터뷰 “한때 재발로 고통…나이에 맞는 작품 하고 싶어”
▶ “’국민배우’ 호칭 부담됐지만 인생 좋은 쪽으로 안내”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신영균예술문화재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4
'국민 배우' 안성기는 지난해 혈액암으로 투병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때때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스크린을 통해 만나왔던 안성기가 아니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가발이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은 얼굴 위로는 암 투병의 그늘이 드리워진 듯했다.
그에게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팬들은 그가 속히 병 치료를 끝내고 다시 모두 앞에 나타나기를 염원했다. 이제 그런 바람이 서서히 이뤄져 가고 있는 걸까.
23일(이하 한국시간) 서울 중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성기는 넉 달 전 한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눴을 때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얼굴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고,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창문을 통해 햇살이 내려앉은 피부에 생기가 돌았다.
그가 근황을 얘기할 때면 검은색 야구모자 아래로 미소가 번졌다. 특유의 따뜻한 웃음도 되찾은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고자 중간중간 목청을 가다듬기도 했다.
안성기는 요즘 건강 상태를 묻는 말에 야구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며 안쪽을 보라는 듯이 가리켰다. 머리 위로는 흰 머리칼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몸 상태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자가 "항암치료가 끝나니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는 거네요"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건강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컨디션도 좋고요.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아도, 매일 하루 한 시간씩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암 투병 이전의 안성기는 철저한 몸 관리로 유명한 배우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무사'(2000), '실미도'(2003) 등에서 다부진 모습은 운동의 결과물이었다.
안성기는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30분 정도 걷고, 나머지 30분은 (무거운 기구를 활용하는) 웨이트를 한다"고 운동 방식을 설명했다.
그에게 "웨이트가 무리는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전혀"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성기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19년의 일이다. 곧 치료에 들어갔고,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3개월, 6개월 단위로 병원을 찾아 몸에 이상이 없는지 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이후 2년 넘게 암 투병의 고통이 다시 그를 덮쳤다.
"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치료를 하자고 했는데, 그것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 고사를 했습니다. 고사할 문제가 아니었는데요. 그 과정(치료)을 다시 했습니다. 아주 힘들었습니다."
1952년생인 안성기는 만 5세때인 1957년 '황혼열차'의 아역으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인생 67년 차를 맞았다. 그에게 평생의 일터로 삼았던 '영화 현장'이 그립지는 않은지 물었다.
"많이 생각납니다. (웃음) 집에서 TV를 통해 그동안 못 봤던 작품들을 쭉 보고 하니까,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네요.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까, 거기에 맞는 작품을 해야겠죠."
암 투병 이후 사실상 연기 활동을 중단했지만 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촬영을 마쳤던 '아들의 이름으로',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 네 작품을 한꺼번에 관객에게 선보였다.
가장 최근 스크린에 오른 '탄생'에서는 '수석 역관' 역을 맡아 관객과 조우했다.
1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그는 배역에 대한 갈증은 더는 없다고 했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워낙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왔기에 이제는 주어진 역할, 거기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못 해봐서 하고 싶은 역할은 없어요. 제가 대통령도 해봤잖아요."
안성기는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서 왔으나 사건·사고와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반듯해 보였고, 스크린을 통해서는 유쾌함과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로 인정받았다.
그는 반세기 넘게 배우로서 살아온 삶을 "후회한 적은 없다"면서도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부담이 됐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그 수식어 하나가 인생살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배우라는 말 앞에) '국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니 확실히 부담되긴 했어요.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고요. 그런데 결국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저를 좋은 쪽(방향)으로 안내를 해줬다고 할까요."
안성기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온 팬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새롭게 준비하는 작품은 아직 없지만, 건강을 회복해 스크린에 꼭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보기에 아직은 몸 상태가 조금 못 미치는 거 같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