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황금 투구’(Casque d’Or·1952)
전과자 목수 조르지(왼쪽)와 갱스터의 애인 마리는 깊은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의 명장 자크 베케의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흑백 명작이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숭고한 동화이자 20세기 문턱의 파리 지하세계의 후진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사실적이요 아름답게 그린 탁월한 작품이다.
가난하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두 남녀의 사랑과 정열이 타인들의 욕정과 질투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는 내용을 시적으로 정감 짙게 그렸다. 특히 제목을 뜻하는 투구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한 금발의 명우 시몬 시뇨레의 모습과 연기가 황홀하다. 이 영화는 1902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2명의 갱 두목과 이들이 모두 탐내는 한 창녀 간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1900년 경. 파리 교외 벨빌의 갱 두목 펠릭스(클로드 도팽)의 졸개 롤랑(윌리암 사바티에)의 애인 마리(시뇨레)는 롤랑의 패거리들과 함께 야외로 놀러 갔다가 만난 목수 조르지(세르제 레지아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전과자인 조르지도 마리에게 반한다. 이로 인해 조르지와 롤랑 사이에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그런데 펠릭스도 마리를 탐낸다.
조르지가 갱의 소굴로 마리를 만나러 갔다가 롤랑과 칼부림을 하게 되고 이어 롤랑이 조르지의 칼에 찔려 죽는다. 한편 마리는 조르지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포기하려고 하나 그에 대한 연모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조르지와 마리는 시골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고 둘은 짧지만 로맨틱한 목가적인 날들을 보낸다.
그런데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는 펠릭스가 간계를 꾸며 조르지의 교도소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자기 졸개 레이몽(레이몽 뷔시에르)이 롤랑의 살해범이라고 경찰에 허위 고자질을 한다. 펠릭스는 조르지가 레이몽이 억울하게 자기가 저지른 살인의 누명을 쓰고 경찰에 체포된 것을 알면 친구를 살리기 위해 경찰에 자수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혼자 남는 마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르지는 경찰에 자수한다.
한편 마리는 조르지를 구해내려고 펠릭스에게 도움을 요청, 그 대가로 펠릭스에게 자기 몸까지 주나 펠릭스는 마리를 배신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조르지는 경찰의 호송 도중 탈출해 펠릭스를 찾아가 그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마지막 장면이 처절하다. 마리가 단두대가 놓인 교도소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여관의 창밖으로 조르지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대사가 별로 없는 단순하고 미적인 영화로 촬영이 감각적이다. 이 영화는 시뇨레(가수이자 배우였던 이브 몽탕의 아내였다)가 가장 아끼는 영화로 예술 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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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