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쥬·JO1·INI·앤팀 등 현지 가수와 차별화로 승승장구
2022 케이콘 재팬에서 공연하는 그룹 JO1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국내 대형 가요 기획사들이 '차세대 먹거리'로 해당 국가 국적자로 구성된 현지화 아이돌 그룹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내 아이돌 육성 노하우를 접목한 이들 그룹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저변을 더욱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일부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과연 K팝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 쏟아지는 현지화 그룹…'K팝 후광' 업고 흥행 성공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세븐틴 등을 거느린 하이브는 이달 현지 법인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을 통해 신인 보이그룹 앤팀(&TEAM)을 선보였다.
앤팀은 일본 현지에서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앤오디션 - 더 하울링'(&AUDITION-The Howling)에서 선발된 다섯 명에 지난 2020년 국내에서 전파를 탄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 출신 네 명을 더해 만든 9인조다.
앤팀은 9명 가운데 7명이 일본인, 1명이 대만인으로 외국인이 대다수를 이룬다. 한국인은 리더 EJ(본명 변의주) 1명뿐이다.
앤팀은 데뷔 음반을 발매와 동시에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정상에 올려놓고,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국내 대형 기획사들은 최근 몇 년간 이 같은 현지화 그룹을 잇따라 내놨다.
SM이 그룹 NCT의 중국 유닛 웨이션브이(WayV)를 2019년 데뷔시킨 것을 필두로 JYP 일본 걸그룹 니쥬(2020), '프로듀스 101 재팬' 시리즈로 배출된 CJ ENM 일본 보이그룹 JO1(2020)·INI(2021)가 속속 현지 팬들을 만났다.
CJ ENM은 국내에서 히트한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일본 버전을 방송하고, 현지 유력 연예기획사 요시모토 흥업과 합작사 '라포네'(LAPONE)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일본 시장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일본에서 '꿈의 연말 무대'로 꼽히는 NHK '홍백가합전'에는 트와이스, 아이브, 르세라핌 같은 인기 K팝 걸그룹 외에도 니쥬와 JO1도 출연자에 포함됐다.
JO1과 INI를 담당하는 임희석 CJ ENM 음악IP사업국장은 "'K팝 DNA'라 할 수 있는 힙합 요소가 담긴 음악 장르, 칼 군무 퍼포먼스, 세련된 스타일링 등 기존 일본 그룹과 차별화를 추구한 것이 경쟁력"이라며 "한 장의 싱글 음반에 댄스부터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하이브는 이 밖에도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여성 그룹 발굴을 준비하고 있다.
◇ K팝 한류 3.0 활짝…"포트폴리오 다변화로 트렌드 변화 대응"
가요계에서는 국내 기획사들이 지난 20여 년간 쌓은 노하우로 해외 시장을 현지에서 곧바로 공략하는 이른바 '한류 3.0' 시대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일찍이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보아처럼 한류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1단계, 외국인 멤버 영입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2단계를 거쳐 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한국의 '문화 기술'(CT·Culture Technology)을 전수하는 3단계로 한류의 현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이른바 '3단계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달 경제 전문 채널 CNBC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곳곳에서 (현지화된) NCT가 만들어지듯이 전 세계가 네트워킹되면서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면 그것이 CT"라고 자신의 지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국내 스타들이 시간을 쪼개 해외를 오가는 것보다 일단 궤도에 오른 현지화 그룹이 보다 안정적으로 해외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이브 박지원 CEO(최고경영자)는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앤팀 데뷔 등을 두고 "다변화된 아티스트 포트폴리오로 특정 국가에 치중하는 것을 피하고 변화하는 트렌드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짚었다.
박 CEO는 또한 앞서 지난 10월 주주서한을 통해서는 "큰 규모의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도전인 만큼, 현지화에 성공하면 주류 음악 시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모호한 색깔은 '약점'…"하이브리드가 곧 정체성, 열린 마음으로 보자"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들 그룹의 색깔이 K팝인지 아니면 J팝·C팝인지 모호한 정체성이 약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록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를 '선배'라고 부르긴 하지만 현지 언어로 자국에서 활동하는 그룹을 K팝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일·한중 국민감정이 악화하는 경우 이런 문제 제기가 수면위로 드러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웨이션브이는 지난 2020년 국내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중국어로 노래해 일부 시청자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한령 탓에 국내 가수들은 중국 시장 진출이 막혀있는데,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한국어 버전도 아닌 중국어곡을 부르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이에 현지화 그룹들은 정체성을 묻는 말에는 대부분 즉답을 회피하거나 'K팝도 J팝도 아닌 우리만의 팝'이라는 안전한 답안지를 내놓고는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현지화 그룹과 관련된 콘텐츠에는 '한국 스타일을 베껴낸 J팝'라는 의견과 'K팝을 하는 일본 아이돌'이라는 댓글이 병존한다.
가요계 관계자는 "K팝도 미국 본토 팝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K팝만의 장르적 특징이 이제 하나씩 규정되는 단계"라며 "(현지화 그룹이) K팝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K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그룹들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워하지만 오히려 그 하이브리드함이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본다"며 "이들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면 글로벌 시장에서 문화 교류가 어려워진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