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문화재단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기술이 매개하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전
▶ 미술·음악·게임·과학 결합 18팀 예술가, 예술+기술, 놀이+실험으로 만난 미래
“안녕, 기분이 어때?”
“나는 당신을 만나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입을 조금씩 움직이면서‘두상’이 답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노진아의 신작‘히페리온의 속도’는 인공지능(AI) 기계를 상징하는 3개의 머리(각 140×140×180㎝)로 이뤄졌다. 누군가“하우 아 유(How are you)?”라고 질문하자 영어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한 초등학생 관객이“어쩔티비”라고 말 건네니‘두상’은“저쩔티비”라 맞받아쳤고, 순간 전시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AI가 말벗이 되고, 아이들에게 유행어를 가르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대표사업으로 지난 7일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개막해 19일 막 내린 제1회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Unfold X)의 이번 전시 주제는 ‘기술이 매개하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Shaping the Future)’. 국내외 융합예술분야 작가 18팀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미래를 예술을 통해, 예고편처럼 펼쳐 보였다.
■이미 다가온 미래
AI에게 언어를 학습시켰음에도 예상 밖의 답변에 놀라곤 한다는 노 작가는 “데이터셋과 학습모델의 조합으로 구성된 인공지능은 네트워크로 공조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지식의 습득과 생성까지도 네트워크를 활용해 확장해 나간다”면서 “인류의 진화는 어디까지인지, 우리의 변화 속도는 과연 괜찮은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작품이 약 6900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NFT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급격히 끌어올린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사건’은 일본 작가 다이토 마나베의 신작으로 재해석 됐다. 오픈시(Opensea)로 공개된 6시간 분량의 이벤트 데이터를 현란한 볼거리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구현했다. ‘놀라운 인기의 망상과 군중들의 광기’라는 제목에는 그렇게까지 열광할 일인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담겼다.
작품 대부분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 비스듬히 놓인 원판형 스크린 앞에서 관객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서 관람이 시작되는 작품은 작가 그룹 ‘로그’의 ‘리베이아어던과 장미꽃 주위를 돌자’다. 집·음식·주거·교육 등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12가지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는데, 이 욕망을 터치할 때마다 대형스크린 위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인간의 욕구가 생태계 용량을 초과할 정도로 많아지면 포식자인 AI 거미가 등장해 이들을 잡아먹는다.
영국의 케이트 레이워스가 창안한 ‘도넛경제학’이라는 대안적 경제학 이론에 기반해, 인간의 과다한 욕구로 파괴되는 생태문제를 진단하고 자연을 지켜낼 존재로서 AI의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거대한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 ‘에브리씽(Everything)’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 데이비드 오레일리가 3년 반 동안 만든 작업이다. 게임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가 3000종이나 된다. 동식물부터 미생물까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들의 관점에서 움직이고 활동하게 한 인공지능 기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생명체의 입장에서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다. 작가는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그녀(Her)’의 가상 비디오 게임을 창작했고, 10분짜리 단편으로 2017년 베를린 영화제 최초의 게임영상 초청작의 영예를 안았다.
■다양한 전문기관 협력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반려동물을 먹이고 기르는 정성만큼이나 컴퓨터에도 데이터를 주고 학습시켜야 한다. 초보도 즐길 수 있는 게임 ‘클래시 트래시 몬스터’는 배준형,엄가람,권하람,이설희 팀이 제작한 비전공자 대상 머신러닝 교육 게임이다. 참여자는 게임 안에서 쓰레기 괴물 분류 모델을 학습시켜 분류기에 설치하고, 몰려오는 쓰레기 괴물들을 적합한 재활용 기계로 보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설 문화체육관광 기술진흥센터의 지원을 받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NC소프트와 협력해 만든 게임이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와 융합예술분야 전문 기관과의 협력이 돋보였다. 독일 예술과 매체기술 센터(ZKM) 큐레이터 다리아 밀레, 사라 돈더레는 개막 이튿날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ZKM이 추천한 작가 듀오 AATB의 작품은 팬데믹 이후 인류의 교류방식을 이야기 한다.
작가들은 산업용 로봇 팔을 접한 후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던 중, 팬데믹으로 발이 묶이면서 전시와 각종 계획의 취소를 경험했다. 이를 계기로 탄생한 작품 ‘악수’는 서로 다른 웹사이트를 통해 접속한 두 명의 관객이 조종하는대로 로봇 손이 움직여 서로를 어루만지고 악수하게 된다.
회화를 전공한 미술가가 잠시 권투선수로 활동하고, 운동 중 부상으로 재활치료를 받았던 이인강 작가의 경험은 ‘드로잉 수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예술가의 동작이 입력된 ‘드로잉 수트’를 착용한 관객은 화가의 몸짓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더해 새로운 드로잉을 그릴 수 있다.
작가 상희의 ‘원룸바벨’은 VR 안경을 착용한 관객이 원룸 공간을 누비며 ‘원룸살이’와 ‘타향살이’ 등을 가상체험 하게 한다. 기술력을 이용해 숙련된 전문가의 몸짓을 내것처럼 이용하고, 타인의 공간과 경험에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경고와 희망의 공존
30년 후의 아쿠아리움은 살아있는 물고기 대신 멸종 동물들을 인공지능과 앱 인터페이스로 보여줄 듯하다. 이리스 취 샤오위, 마크 리, 셔빈 사레미 등 작가 3인의 공동작업 ‘YANTO-뒤집어지지 않고 기울어지기’는 미래의 양어장을 체험하게 한다. 양어장의 AI가 하이브리드 종을 개발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와 해양산성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업이다.
우박스튜디오의 ‘맵 탈출 투어’는 게임 속 버그를 활용해 ‘맵을 탈출하는’ 게임 유저의 행위를 이용했다. 배경은 구글 어스 같은 디지털 지도다. 재개발이 예정된 마을, 완공될 아파트 단지, 보안상의 이유 또는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워진 스트리트뷰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도 안에 재구성 했다. 맵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엄연히 실존하는 공간을 통해 데이터 선별의 기준, 경계밖의 존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광활한 우주로의 여행이 아닌, 초미세 영역인 나노 세계로의 여행도 가능하다. 일본 태생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료이치 쿠로카와의 ‘ad/ab Atom’은 국제 이베리아 나노기술 연구소(INL)에서 제공받은 나노 단위의 관찰로 감지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몽롱하게 떠다니다 희미하게 부서지는 장면, 삐걱거리거나 윙윙거리는 소리가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쿠로카와의 작품은 테이트모던, 퐁피두센터 등에 소장돼 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ARS 일렉트로니카, 뮤텍 페스티벌 등 국제적인 행사에서 선보였다.
서울문화재단은 2010년 금천예술공장에서 시작한 ‘다빈치 아이디어’ 기획전을 10년 가까이 꾸준히 진행하며 예술과 기술의 결합 및 융합예술 분야를 선점했다. 이를 ‘언폴드엑스(X)’로 이름 바꾸고 2년간 진행하며 개최지를 확장시켰고, 올해부터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로 새단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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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상인 미술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