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용선·오원배·곽남신·정현 등 거물급 중견작가 5명의 기획전
▶ ‘토포하우스’서 13일까지 열려…“가장 본능적인 예술표현 방법”
사진제공=토포하우스
사진제공=토포하우스
‘그리다’는 뜻의 드로잉(Drawing)은 밑그림·스케치·습작과는 엄연히 다른, 독립적 작품이다. ‘드로잉’은 손과 눈을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즉각적인 아이디어의 발현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이후로 드로잉은 장르로서 재평가되는 중이다.
거물급 중견작가 5명의 드로잉만 집중 조명한 기획전 ‘긴 호흡’이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11월 13일까지 열린다. 서용선·곽남신·오원배·정현·윤동천이 그 주인공이다. 종로구 팔판동에서 리씨갤러리를 운영했던 이영희 대표와 오현금 토포하우스 대표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인간과 그 실존문제에 대해 평생 고민해 온 작가 오원배(69)는 드로잉에 대해 “사유와 상상의 살을 뼈에 바르는 행위와 기록”이라고 말한다. 올려다 본 하늘에서 발견한 전신주와 전선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나란히 걸렸다. 작가는 어떤 일상적 경험을 내면에 새기는지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암시하는 듯한 건축 구조물, 고뇌하는 듯하나 눈동자가 없는 인간의 모습 등 작가의 대표작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도상들이다. 프랑스 유학파인 오원배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있지만 동양화적 기법을 놓지 않은 채 자신만의 개념적 회화로 발전시켰다.
맞붙은 벽에 작품을 건 조각가 정현((66)은 드로잉에 관해 “내 근육이나 내장에 또는 신경에 붙어있던 감정들이 밖으로 표현되기에, 가장 첫 번째 드러내는 것이 드로잉”이라며 “그것이 어설픔이든, 거침이든, 소심한 해방이든 존중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철로의 침목, 아스팔트 찌꺼기, 콘크리트, 불 탄 나무 등을 작업 소재로 이용하는 정 작가는 콜타르로 드로잉을 그린다. 억눌렀던 감정의 분출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인간을 주제로 한 작업의 흐름이 드로잉에도 고스란히 담겨, 거침없는 선(線)들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볼 수도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낸 곽남신(69) 작가는 “드로잉은 태어나려는 자가 세상을 만져보고, 사유하고, 조우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꼼꼼하게 혹은 두텁게 물감을 쌓아가며 화면을 만드는 정통적 회화 작가라면 드로잉과 페인팅이 엄격히 구별되겠지만, 곽 작가는 드로잉 그 자체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선으로 구현한 작업이 인물을 그려내는데, 작가의 시그니처인 그림자까지 함께 배치하는 정교함이 담겨 있다.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온 화가 서용선(71)은 “표현 재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드로잉은 일상의 자유로움과 사람의 몸짓이 모두 의미가 있음을 일깨우는 장르”라며 “그림은 인간의 본능적 자기표현의 방법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본능적이고 신체성이 직접적으로 각인되는 분야가 드로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속살 내놓는 솔직함으로 그린 자화상 2점을 내놓았다.
냉소적이면서도 언어유희적인 개념미술가 윤동천(65)이 보여주는 ‘드로잉’이 가장 흥미롭다. 그는 “드로잉은 마치 예술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정의할수록 달아나는, 그리하여 이윽고 한껏 자유로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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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미술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