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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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오비구

2022-07-28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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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길고 긴 한여름 태양이 빛나고 있지만, 하지 이후, 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힘든 여름도 가고 있다. 여름의 영화사 가든 일은 그냥 일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고행이다. 고행은 고된 일 때문이 아니라, 서포트 없는 세상에 사는 이 중의 시절인연 때문이다. 부처님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부처님 성도 이전 고행시대 당시, 그곳 수행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통해 깨달음이 이루진다 믿는 사람들이었다. 부처님도 한때, 그들과 함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극심한 고행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아시고, 멈추셨다. 그에 실망한 도반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멀리 녹야원으로 떠났고,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나무 아래서 홀로 수행하시던 부처님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게 되신다. 그 평안을, 고행하는 도반들에게 전해주고자, 부다가야에서 녹야원까지 먼 길을 걸어가셨다. 그리고,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설법을 하시게 된다. 그때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의 첫 제자가 된 이들이, 불교 역사 속의 저 '오비구'이다. 오비구처럼, 영화사엔 영화사 초창기 멤버인 오법우가 있다. 시간 차는 있지만, 거의 모두 십 년 넘게 묵묵히, 이 중을 따라 고행을 하고 있다. 한국사찰 하나 없는 이곳에 영화사 만은 남겨보자는, 이 중의 뜻을 존중해서다. 북가주 불자의 현주소는, 영화사 장학금 모연에 단 1불도 보시한 이가 없다, 는 지점이다. 큰 기대는 없었어도, 이렇게 전무, 할지는 몰랐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유명하단 스님이 올때마다 달려가는, 그 스스로 불자인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인가, 너무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이곳 어느 절에도 다니진 않지만, 불자란 그들을 이 중도 몇 알고 있다. 그들은 불교행사 마다에 있지만, 어느 절에도 행적이 없다. 그들을 생각하면, 십 년 동안 영화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오법우는 이상하리만치 대단한 것 같다. 이번 모연금 부재 덕분에 얻은 게 있다면, 우리 오법우, 대행심, 법야, 혜등, 사마타, 수지환이 새삼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중이 보시자에게 감사하면 안된다. 보시는 청정무상 보시이기 때문에, 그곳엔 일체의 감정이 들어가선 안된다. 감정이 들어가면 차별심이 나고, 차별심이 나면 청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단하단 생각이 일었으니, 이제 우리 오법우와도 작별의 때가 온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장학금 모연엔 모연도 모연이지만, 이 지역 불자의 관심도를 알고픈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이곳 절 이름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시도할 때, 부응해줄 불자의 유무에대한 현실성 파악이다. 영화사 장학금 보시자가 단 한 명도 없단 것은, 보시의 유무대소를 떠나, 현지 불교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관심이 전무하단 얘기다. 그리고 이 땅의 한국사찰 존속 여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교 불모지 이 땅에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살자던, 굳센 그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처님께서도 고행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아마도 부처님을 바라보는 이 중의 마음도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극한 고행은 하지 말고, '고락중도'를 실천하란 가르침도 현실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힘들고 고된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깨달으신 부처님이 아니라, 고행하던 부처님이 힘이 될줄은 진정 몰랐지만, 고난이 끝날 날이 있음을 믿게 하여, 희망이 되었었다. 영화사 오법우가 극한 고행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세세생생 남을, '녹야원'을 여기 만들고 있는 것만은 획실하다. 녹야원 당시의 부처님께서도 처음엔 오비구로 시작하셨다. 그리고 곧, 수많은 불자들의 희망과 위로와 행복의 빛이 되셨다. 그 빛을 미량이나마 닮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극심한 고행을 한 번에 털어버릴, 그 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로 가고 있는 것이기를. 불모의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오법우, 참불자들에게 처음으로 견책이 아닌, 칭찬을 전한다. 긍지를 갖기를. 다만 이제사 드는 의문 하나는, 이 중처럼, 이들도, 이곳에 최초의 절 남기는 일을 진정 원하고 있는가, 이다. 모르겠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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