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루 아홉개 봉우리 정상 정복의 성취감 만끽

2022-07-22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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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Mt. San Gorgonio 9 Peaks

하루 아홉개 봉우리 정상 정복의 성취감 만끽
하루 아홉개 봉우리 정상 정복의 성취감 만끽

하루 아홉개 봉우리 정상 정복의 성취감 만끽

등산코스

Vivian Creek TH(6008’) → Mt. San Gorgonio(11503’) → Jepson(11205’) → Little Charlton(10696’) → Charlton(10806’) → Alto Diablo(10563’) → Shields(10680’) → Anderson(10840’) → San Bernardino East(10691’) → San Bernardino(10649’) → Angelus Oaks TH(5945’); 25마일, 8000’ Gain

가는 길


한인타운의 가게앞에서 03:30에 수잔강 홍사일 두사람을 만나, 나는 내 차로 혼자가고, 그 두 사람은 수잔의 차로 함께 출발했다. 두 대의 차가 함께 Big Bear의 Angelus Oaks로 가서 거기에 내 차를 세워놓은 다음, 수잔의 차에 다 함께 타고 Vivian Creek의 Trailhead로 가서 차를 세웠다. 행장을 차리고 출발한 시각이 06:06이었다.

강희남 유용식 김재권 백승신 내외분 등 다섯분이 우리가 출발하려 할 때, Trailhead에 도착했는데 이 분들은 목표가 Mt. San Gorgonio정상일 뿐이므로, 우리는 한 발 앞서서 그냥 출발했다.

Vivian Creek Camp, Half Way Camp를 거쳐 High Creek Camp에 도착했을 때가 대략 09:00이었는데, 뒤처진 홍사일님을 기다릴겸 쉴겸15분정도를 앉아 있노라니, 홍사일님과 산악회원들이 연이어 도착했다. 홍사일님은 고산증을 느껴서 더는 산행을 하기가 어렵겠다며 우리 두 사람만 산행을 지속하라며 포기하는 바람에 수잔과 나, 둘이서만 다시 정상을 향했다.

Mt. San Gorgonio(11,503’)에는 11:30에 도달했는데, 정상전 500미터쯤에서 어제 Fish Creek Trailhead를 출발하여 도중의 Fish Creek Saddle에서 1박을 하고 오늘 일찍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장경환, 김철웅, 이명재, 야니신, 김원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때는 우박과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고 번개와 천둥도 잦아, 피차간에 다소 정신이 없는 상황이어서 간단히 ‘벼락치듯’ 수인사만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Gorgonio정상에서 등록부를 펼치고 서둘러 이름을 적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추위로 손이 곱아서 이름쓰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바쁘게 옮겼는데, 하늘은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상태로, 매우 화가 나있는 상태에서 가까스로 화를 견디고 있는 양, 단속적으로 으르렁 으르렁 가늘고 낮게 신음소리같은 뇌성을 흘리고 있어, 다소 불안한 심정이었다. 사실 Gorgonio정상부근을 내려올 때, 눈이 잠시 멀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진 일이 있어, ‘아이쿠! 여기서 죽나 보다’며 깜짝 놀랐었다.

두번째인 Jepson Peak(11,205’), 세번째인 Little Charlton Peak(10,696’), 네번째인 Charlton Peak(10,806’)을 거쳐 내려와 이윽고 Dollar Lake Saddle(10,000’)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때가 대략 13:20이었는데, 다시 비가 쏟아져서 대충 서둘러 먹고 일어나야 했다.


발길을 옮긴지 얼마지 않아 체격이 장대한 백인 젊은이 하나를 만났다. 지금 막 Alto Diablo Peak 쪽에서 내려오는 길인데 그곳에 큰 Black Bear가 있어 많이 지체하다 겨우 내려오는 길이라며, 더 가지말고 자기를 따라서Falls Creek Trail을 거쳐 Momyer Trailhead쪽으로 내려가기를 권했다. 우리의 차가 있는 Vivian Creek Trailhead로 데려다 주겠단다.

나는 곰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수잔의 의견을 물었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곰이 있을 까요? 설사 곰이 있다해도 트레킹폴로 이렇게 ‘딱딱딱딱‘소리를 내면 곰이 피해 갈 텐데 뭘 걱정해요?“ 라는 막무가내 용감무쌍한 반응이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남자라는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 물러날 수는 없고 오로지 전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천우신조로 운좋게 벼락을 피했는데, 이젠 결국 곰에게 당하나 보다.

좋다! 주사위는 던져 졌다. 임전무퇴 배수의 진이로다! 일체유심조! 난 지극히 무지막지 용감무쌍한 말탄 기사 동키호테다!

마냥 걱정스러워하는 친절한 젊은이를 뒤로하고 보무도 당당하고 과감한 몸짓으로 앞으로 오르는 내 마음은, 그런데 웬지 자꾸만 작아지고 착잡해졌다.

“블랙베어는 그 난폭성이 어느 정도일까? 그 놈이 지금 배가 고플 때는 아닐까? 수잔은 100파운드가 될까 말까한 가냘픈 여성이니 결국 나 혼자 그 녀석을 상대해야 잖아! 홍사일님은 왜 그리 쉽게 중도 포기를 한거야! 뒤에서 누구 오는 사람은 없나? 미국의 산들은 왜 이렇게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거야? 아! 이런 때 집에 간직하고 있는 미해병대용 대검이 여기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아, 나는 원래 동키호테는 결코 아닌 건데! 그보다는 차라리 햄릿의 특성을 가진 편이지! 아니지, 이 말을 햄릿이 들으면 명예훼손이라며 기분 나빠할거야! 햄릿은 그래도 ‘약한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며 여자를 연약하게 보는 기개라도 있었는데, 지금 나는 완전 거꾸로 이게 무슨 꼴이냔 말이야! 차라리 이쯤에서 꼬리를 내리고 수잔에게 그만 돌아가지고 무릎꿇고 애원해 볼까? 체면을 구기는게 생명을 잃는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어! 아니지, 단지 이성적인 선택을 하자는 것이니 체면을 구기는게 아니고, 오히려 난폭잔인한 야수로 부터 가녀린 미녀를 끝내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당차고 멋진 기사도의 발현인 셈이지!”

이 와중에도 둥그스럼한 봉우리가 보이면 그것이 Alto Diablo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일일이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빠짐없이 다 올라가봐야 했는데, 결국 왔다 갔다 헤매다가 네번째로 올라간, 등산로 바로 왼편 30m쯤에 있는 작고 낮은 바위무더기 봉우리가 바로 Alto Diablo(10,563’)였다.

천만다행히 아직 곰은 안보였는데, 그래도 마음이 켕겨 정상등록부에 다급히 이름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그런데 수잔은 왜 이런 때 저렇게 뭉그적거리고 있는 거야, 곰이 나오면 어쩔려고! 원래 곰이 변해서 웅녀가 됐다 해서, 이 곰이 뭐 호랑이 담배피우던 먼 조상시절에 혈통상 인연이 있다 하여 여자는 무조건 봐주는지 아나보지! 그런데 여기는 한국이 아닌 미국인데다, 외국역사에 관심이 없을 거만하고 무지한 지구최강의 부잣집 태생인 미국곰이 그런 족보를 알기나 하겠어!”

속으로는 어쨌거나, 겉으로는 곰을 잡아서 왕년의 공군병장으로서의 남자다운 기개를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질투심이 발동된 운명의 여신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원통애석하게도, 그냥 영웅적인 활약상을 펴 보이지 못한 채, 여섯번째의 봉우리 Shields Peak(10,680’)에 오른 시각이 15:36이었다.

온통 주먹 크기부터 절구통 크기까지의 그만 그만한 돌들로만 뒤덮여 있는 그런 산봉우리를 둘러보니 몇해 전에 Forsee Creek Trail코스로 이 곳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상에서 10미터쯤 동쪽으로 Lodgepole Pine이 너댓 그루 서 있을 뿐, 완전한 돌무지였다. 북쪽 저 편 아래로 Sugarloaf Mountain(9952’)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까이 또 온전히 잘 보이는 점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다시 일곱번째인 Anderson Peak(10,840’)으로 진군의 행보끝에 16:10경에 정상에 올랐는데, 이 때까지도 하늘은 앙앙불락 천둥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이곳은 흙과 돌이 적당히 섞여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걷기에 훨씬 편하고 분위기도 훨씬 쾌적했다. 해발 10000’가 넘는 고산지대의 Lodgepole Pine숲을 걷노라니 이야말로 바로 선계가 아닌가 싶은 진한 경외감에 젖어든다.

17:16에 여덟번째인 East San Bernardo Peak(10,691’)에 올랐다. 정상은 주봉이 아닌 남쪽으로 약간 삐져나온 돌무더기 돌출부에 있었다. 이곳에 섰을 때 Mt. San Gorgonio쪽으로 선명하게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어, 이를 한참동안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인 아홉번째의 봉우리인 San Bernardo Peak(10,649’)에 오른때가 18:00이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물을 마시며 휴식했다. 작은 돌무더기속에 말뚝같은 게 꽂혀있고 주변엔 Lodgepole Pine이 자라고 있었다.

몸은 피로하고 다리도 뻐끈했으나, 2주일전의 Mt. Baldy 9 Peaks( Ontario, Bighorn, Cucamonga, Timber, Telegraph, Thunder, Harwood, Baldy, West Baldy)에 이어, ‘여기 Mt. Gorgonio 9 Peaks도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이로써, 하루에 총고도 97674’의 산(순등반고도로는 약 8000’)을 오른 셈인데, 아전인수격의 어거지로 표현하면 Alto Diablo의 시행착오로 12 Peaks 를 올랐다고도 할 수 있겠다.

18:30에 하산을 시작했다. 아직도 8마일을 더 가야하니 조금은 아찔한 기분도 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가 궁금했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경치들이 그래도 예전에 몇 번 보았던 것들이라서 반갑고도 새로왔다. 대부분의 구간을 거의 달리다시피 빠르게 움직였는데, 19:50이 되었을 때는 Head Lamp를 켜야만 했다.

내려오는 길, 특히 Wilderness Sign 이 있는 곳에서부터 마지막 2마일의 긴 Switchback 내리막은 정말 지루한 느낌을 주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한 아주 캄캄한 어둠속에, 21:06, 드디어 최종 목적지이고 이른 아침에 미리 와서 내 차를 주차해 두었던 곳인, Angelus Oaks의 Trailhead에 도착했다. 정확히 15시간이 걸린 셈이다.

항상 그렇지만, 배낭을 풀고 차에 올라타니,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 없었다. Vivian Creek Trailhead로 차를 몰고가니, 홍사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많이 지루하셨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귀갓길에 올랐는데, 오늘 역시 수잔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9 Peaks산행이었다. 수잔은 특히 발을 삔 상태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동행해주어 새삼 놀랍고 고마운 마음이다. Baldy때도 그렇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거개가 9 Peaks산행에 함께 나서길 꺼리는 가운데 남자도 아닌 여성인 수잔이 나서 주었기에 할 수 있었다. 대단히 쎈 여성이고,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등산 벗이다.

오늘 날씨는 매우 안좋은 편이어서, 정상부위에서 벼락의 위험이 있었고, 한 동안은 배낭과 옷이 우박과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산행을 하여야 했다. (2011년 8월)

사족 : 필자는 최근(07-10-2022)에 Sierra Club의 공식산행으로, Mt. San Gorgonio 13 Peaks 등산을 했는 바, 총 29마일 거리에 20시간이 소요됐었다. 위에서 기술한 9 Peaks외에 Grinnell Mountain(10284’), 10000’ Ridge Peak(10094’), Lake Peak(10161’), Zhaniser Peak(10056’)이 추가된 것으로, 참가자(10인)들 대개가 많이 힘들어 했던, 추천하고 싶지 않은 등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등산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9 Peaks의 오래전 산행을 간략한 산행기 형식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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