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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무엇이 다른가

2022-07-08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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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생일이 되면 클래식음악 라디오방송에서 하루 종일 모차르트 음악이 나온다. 그날이 모차르트 탄생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차르트와 생일이 같다. 감수성 예민하던 젊은 시절, 우수 비애 갈망 공허 … 같은 회색빛 감정들이 밀려들 때면 생각했다. 천재의 기운이 깃든 날 천재성 없이 태어나서 겪는 부조화의 슬픔인가보다고. 감성만 있고 그걸 끌어안고 표현할 재능이 없으니 내면의 풍경은 ‘흐림, 매우 흐림’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8·한국예술종합학교)을 보면서 ‘천재’를 생각했다. 10대의 이 소년은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근년 한국에서는 10년 주기 피아노천재 등장설이 돌았다고 한다. 1984년생 임동혁 - 1994년생 조성진 - 2004년생 임윤찬으로 이어지는 천재 계보이다. 임동혁은 2005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형 임동민과 함께 2위없는 공동 3위로 한국인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고, 조성진은 10년 후인 2015년 같은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임윤찬은 7살 때, 다른 아이들이 다 뭔가를 하니 자신도 태권도든 피아노든 해야 될 것 같아서 시흥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처럼 발견된 재능이 쑥쑥 자라 11년 만에 고지를 점령했다.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훨씬 전문적으로 피아노를 배웠을 많은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들을 떠올려본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준결선까지 올랐던, 그보다 10년 전후 선배인 3명의 우수한 한국 피아니스트들을 생각해본다. 지금 그들이 감내하고 있을 열패감은 어떤 것일지 상상해본다.


천재는 수재와 무엇이 다른가. 대회 우승 후 임윤찬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몰입의 정도와 좋아하는 정도이다. 반 클라이번 대회 중 그가 한 연주들에는 ‘신들린 듯’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신들린 듯’이 아니라 ‘신들린’이 맞을 것이다. 귀국 후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인터뷰에 이어 연주를 했다. 번쩍번쩍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 속에서 소년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피아노 앞에서 그는 세상과 격절된다. 완전한 몰입이다.

그는 보통 하루 12시간씩 피아노를 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승 직후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하고만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피아노가 좋으니 몰입하게 되고, 시간을 잊은 채 연습하게 되고, 실력은 늘 수밖에 없다.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최고가 되려면 10년,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의식도 못하는 사이 완수된다.

이 모든 집중과 몰입, 끈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재능이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니 더욱 열심히 연습하겠다”거나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고, 성인이 되기 전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기 위해 콩쿠르에 나왔다”는 말들은 18살의 임윤찬을 많은 우수한 인재들로부터 갈라놓는다. 다른 차원이다.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들은 그들만의 경지가 있다. 사격수로 치면, 수재는 아무도 맞히지 못하는 표적을 맞히고, 천재는 남들이 볼 수조차 없는 표적을 맞힌다고 그 자신 천재인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천재는 비전 혹은 상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재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최정상에 오를 때, 천재는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 하는 다른 차원의 정상에 오른다. 인간이 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때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바라보았다. 19세기 후반, 그림으로도 여겨지지 않던 인상주의 그리고 고갱, 고흐, 세잔 등의 탈 인상주의, 이어진 20세기 초반의 야수파, 추상주의, 표현주의는 21세기인 지금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다. 천재들이 한 세기 전에 본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 진다”고 역시 천재인 에디슨은 말했다. 수재도 천재도 노력하기는 마찬가지지만 1%의 영감, 천재성이 둘을 가른다는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강 때문에 당혹하고 열등감, 분노, 질투로 눈이 머는 것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모차르트 시대의 뛰어난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는 존경을 한몸에 받는 궁정음악가, 모차르트는 망나니 천재로 그려진다. 감당 안 되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다 살리에리가 그를 독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룩한 성취가 한순간에 빛을 잃는 듯한 충격에 그가 괴로웠을 개연성은 높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 천재라는 하늘의 특별한 선물에는 대가가 따른다. 천재는 고독이라는 저주를 받는다고 쇼펜하워는 말한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세상보다 약간 위, 약간 떨어져 있음으로써 근원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다. 각자 타고난 그릇이 있다. 그릇에 재능이 덜 담겼다면 사랑, 관용, 겸손 혹은 미모나 건강 등 다른 가치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산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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