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시림이던가…아름답고 풋풋한 고지대 송림 속으로

2022-07-08 (금)
크게 작게

▶ 산행가이드 Charlton Peak(10,806’)

원시림이던가…아름답고 풋풋한 고지대 송림 속으로
원시림이던가…아름답고 풋풋한 고지대 송림 속으로

원시림이던가…아름답고 풋풋한 고지대 송림 속으로

요즘처럼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서라도 해발고도가 높은 큰 산을 골라 등산을 하게 되는데, 하절에는 더불어 일조시간도 길어서, 역시 장거리 산행이 될 가능성이 많은 고산을 찾기에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다행히 우리 남가주의 LA일원에는 해발고도가 10000’가 넘는 봉우리들이 수십개나 있어 실로 다양한 산으로의 등산이 가능하다.

이러한 고산으로의 등산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큰 기쁨들 중의 하나는, 이런 산들은 아무래도 인적이 드물기에 거의 원시의 자연상태가 그대로 보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침엽수림들, 특히 소나무숲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범위내에서, 등산을 하면서 남가주 일원에서 흔히 만나게 되고 감동을 주는 침엽수(Conifers)류는 Pinyon Pine, Ponderosa Pine, Jeffrey Pine, Coulter Pine, Sugar Pine, Limber Pine, Lodgepole Pine, Douglas Fir, Juniper, Incense Cedar 등을 들 수 있겠는데, 다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고도가 높은 9000’ 이상의 고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수종으로는 Limber Pine과 Lodgepole Pine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소나무는 얼핏보면 서로 매우 유사하여 구별키가 쉽지 않다. 몇가지 특징들 가운데 가장 손쉬운 구별법은, 한 작은 솔잎다발(Fascicle)에 2개의 바늘잎이 돋아나 있으면 Lodgepole Pine이고, 5개의 바늘잎이 돋아나 있으면 Limber Pine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개개의 바늘잎이 Lodgepole은 다소 굵고, Limber는 다소 가늘다는 특징이 있다.

수목의 성장한계선을 넘나들 만큼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수종이라 아마도 여러 면에서 생존환경이 가혹하기 때문인지, 특히 Lodgepole Pine을 보면, 그 키는 그다지 크지 않으면서 몸통이 아랫부분은 굵고 윗부분으로 가면서 급격히 가늘어지는 모양새이며, 옆으로 뻗어나는 가지의 크기가 길지 않고, 잎이 많지 않다는 특성이 있다.

어쩌면 고지대에서 늘 맞게 되는 세찬 바람이나 눈보라에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기 위한 진화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소나무를 볼 때에는, 정녕 빼어나게 아름답고도 지혜로운 어떤 존재를 대하는 것 같은 경외감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Lodgepole Pine이나 Limber Pine의 숲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느꼈던 곳을 필자 나름으로 꼽아 본다. Mt. San Gorgonio 지역에서는, San Bernardino Peak에서 Shields Peak까지 10500’내외 고도의 4마일쯤에 걸친 능선과 그 주변, Dobbs Peak의 북쪽 비탈, Dragons Head의 서남쪽 비탈, Mt. San Gorgonio의 동북쪽 경사면, Grinnell Mountain의 정상주변, 10000’ Ridge 주변, Charlton Peak의 기슭 등이다.

Mt. San Jacinto 지역에서는, Mt. San Jacinto에서 부터 Folly Peak, Drury Peak, Jean Peak, Marion Mountain에 이르는 지역중 10000’ 이상되는 고도구역이다. Mt. Baldy지역에서는, West Baldy정상부의 서쪽과 남쪽 비탈, Mt. Harwood(9552’)를 지나는 Backbone Trail의 일부구간 등이 떠오른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읽고 현란한 감동을 받았던, 정비석(1911~1991)님의 금강산기행문 ‘산정무한’에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공주(樹中公主)이던가!”라는 구절이 떠오르는데, 이 곳 LA일원의 고도 10000’를 넘는 하늘에 맞닿는 정갈한 고처(孤處)에 감연히 뿌리를 내리고, 욕심없이 최소량의 맑디 맑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만을 취하며 살아 왔을 이 소나무들이야 말로 실로, 가없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향기로운 ‘수중선녀(樹中仙女)’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인적이 아주 드물면서 이렇듯 아름답고 향기로운 송림도 실컷 즐길 수 있는 Charlton Peak(10806’)의 등산을 안내한다. 미국정부의 지형조사 공무원이었던 Donald McLain이, 1921년에 Angeles National Forest의 Supervisor로 재직하던 Rushton H. Charlton에 헌정함으로써 이 산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왕복 14마일에 순등반고도는 4200’으로, 10시간 내외가 소요되는 싱그러운 산행이다.


가는 길

I-10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San Bernardino를 지나서 Orange Street Exit으로 나간다. 출구로 나가서 1블럭을 더 직진하면 Orange Street에 닿는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북쪽으로 0.5마일을 가면 Lugonia Avenue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한다.

이 길은 San Bernardino국유림을 관통하여 Big Bear Lake까지 이어지는 간선도로 SR-38 이 된다. I-10 을 나와서부터 SR-38을 따라 약 8.4마일을 가면 오른쪽으로 Mill Creek Ranger Station이 나온다. ( 과거에는 이곳에서 Self-serve입산허가증을 만들어 지녀야 했는데, 그러나 지금 현 싯점에는, 이곳이 아닌 오로지 ‘wildernesspermits@sgwa.org’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

다시 SR-38 을 따라 Angelus Oaks까지 11마일을 더 가면 Fire Station이 있는 Angelus Oaks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계속 직진으로 7.2마일을 더 간다. 오른쪽으로 Jenks Lake Road가 나 있다. 우회전하여 이 길을 따라 0.7마일을 직진하면 왼쪽으로 South Fork Trailhead의 주차장(6850’)이 나온다.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다. 주차증을 걸어 놓아야 한다. LA한인타운에서 약 98마일의 거리이며, 여기까지의 전 구간이 포장도로이다.

등산코스

안내판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간다. 등산출발점 자체가 이미 해발고도 6850’(2080m)에 이르는 고지대이기에 어느 계절이라도 공기가 마냥 청량하다. 예전에는 산행 시작부터 푸르고 장대한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모든 소나무들이 검게 탄 숲을 이루고 있어, 스산하고도 애석하다.

그 대신에 검게 탄 큰 나무들 아래로는 무성하게 자라난 키 작은 초본식물들이 푸르고도 화사하다. 유난히 금년에 많이 내린 눈과 환히 열린 하늘로 인해 온갖 식물들이 모처럼 제 세상을 만나 만화방창의 생명력을 한껏 발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탄생이라는 뭇 생명의 순환현상이 확연히 드러나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1.1마일 지점에는 Horse Flats(7450’)라는 초원이 있다. 아마도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는 특히 필수불가결의 교통수단이었을 말들을 기르던 곳이 아니었나 싶은데, 지금은 자그마한 낡은 목조건물 2개가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버려져 있는 양상이다. 엄청 큰 키와 굵은 몸통으로 그 늠름함을 뽐내던 소나무 몇 그루들도 온 몸을 시커멓게 그슬린 채 쓸쓸하게 서 있다.

1.25마일에 도로를 교차하고, 2.0마일에 Poopout Hill(7820’)이라 부르는 곳에 이르른다. 예전에 마차를 끄는 동물들이 이 고개에 올라서면 완전히 지치곤 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이름이라니, 우리의 표현으로 ‘깔딱고개’정도의 의미일 듯하다.

우리가 나아 갈 길은 Wilderness표지가 있는 직진방향이지만, 좀 편하게 쉬어가고 싶다면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로 200m쯤을 들어가 보시길 권한다. Mt. San Gorgonio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처로 벤치와 기념물이 있다. 8월도 벌써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커다란 Snow Patch를 이마에 두르고 있는 남가주의 최고봉이 바로 이 Mt. San Gorgonio(11503’)이다.

3.8마일에 이르면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며 안내판(8200’)이 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우리는 여기에서 직진해야 하지만, 휴식 겸 구경삼아 좌측으로 난 길을 조금 들어가면 일년 내내 그치지 않고 흐르는 South Fork의 청량한 계류를 만나게 된다. 어느 해에는 특히 유수량이 많아 몇 개인가의 지류로 다시 나뉘어 천방지축으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시원하고 풍성한 정경을 보인다.

Slushy Meadow로 불리는 곳으로 계류를 따라, 당근류의 일종이면서 맹독이 있을 수 있지만, 신화속의 영웅 Heracles는 이를 즐겨 약으로 애용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는Cow Parsnip들이 다른 식물들 위로 고개를 뽑아 올린 채 그 젊음을 자랑하듯 한껏 무성하고 푸르다. 산방꽃차례(Rounded Clusters)로 듬뿍 피어 올린 하얀 꽃들이 마냥 소담한데 그러나 접근은 절대로 삼가고 그냥 눈으로만 즐길 일이다. 계속 이 길을 따라가면 Dry Lake에 이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 나와 갈림길에서 직진 한다.

5.3마일(9500’)에 이르면 왼쪽으로 작은 등산로가 갈라져 내려간다. 0.5마일 쯤 떨어진 Dollar Lake에 이르는 길이나, 우리는 계속 직진한다. 이 쯤에서 등산로의 왼쪽으로 가까이 우뚝 솟아나 있는 봉우리가 바로 오늘 우리의 목표인Charlton Peak이며, 그 왼쪽 뒤로 Mt. San Gorgonio(11503’)와 Jepson Peak(11205’)의 일부가 보인다. 등산로의 오른쪽으로는 그 옛날 언젠가 대대적인 바위사태가 났었는 듯, 크고 작은 바위들이 꽤 넓게 비탈을 이루고 있는 소위 ‘너덜겅’이 있어 자못 이채롭다.

이윽고 Lodgepole Pine이 빽빽히 숲을 이루고 있는 Saddle에 도달한다. 등산로를 자세히 안내해 주는 이정판들이 있다. 우리 등산인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Dollar Lake Saddle(6.05마일, 9960’)이다. 깊은 산속에는 아주 드문 4거리로, 오른쪽은 San Bernardino Ridge Trail이며, Alto Diablo, Shields, Anderson, San Bernardo East, San Bernardino Peak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정면은 Momyer Trailhead에 이르는 Falls Creek Trail이고, 왼쪽(남쪽)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데 만약 이 길로 3마일 내외를 계속 나아가면 마침내는 Mt. San Gorgonio에 이르는 등산로인데, 오늘은 그렇게 많이 갈 필요는 없다.

10000’가 넘는 고지대 솔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6.5마일 지점(10250’)에 이르면 등산길이 좌측으로 크게 굽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곳에서 곧장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1마일되는 곳에 있는 봉우리는 Dobbs Peak(10459’)다.

이제 바짝 굽어지는 이 지점에서는 등산로를 벗어나 왼쪽의 산비탈을 올라야 하는데, Charlton Peak 정상은 동북쪽으로 약 0.5마일 거리에 있다.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고지대 송림의 풋풋한 향기와 빼어난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걷다보면 이윽고 평평하고 널찍한 가운데 지금까지의 주된 수종이었던 Lodgepole Pine과는 달리 지면에 낮게 깔린 Limber Pine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자라는 정상(10806’)에 도달하게 된다. 지극히 안온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전망이 대단하다. 동남쪽 2마일쯤에 밝은 회색빛으로 빛나는 Mt. San Gorgonio와 Jepson Peak이, 동쪽으로는 약 3마일 거리에 Grinnell Mountain(10284’)이, 북쪽으로는 Sugarloaf Mountain(9952’)이 둘러있는 등 그 탁트인 환상적인 멋진 경치에, 복잡다단한 세상만사로 자못 답답해져 있는 흉중이 뻥 뚫리는 듯한 그런 벅찬 상쾌함을 맛보게 된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