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대사 교란 화합물, 48시간 이내 바이러스 복제 중단
▶ 유명 비만 치료제 복제비만 치료제 ‘제니칼’도 같은 효과
▶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논문
바이러스가 숙주 내에서 증식하려면 계속 에너지를 구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의 지방 처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입자 복제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신종 코로나는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를 좋아했다.
인간도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이 중성 지방을 많이 쓴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면 체내 지방으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능력이 약해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시중에 판매 중인 비만 치료제와 새로 찾아낸 실험 화합물을 테스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복제가 억제된다는 걸 확인했다.
이 발견이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미국 오리건 보건 과학대(OHSU)의 피카두 타페스 분자 미생물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 연구엔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 연구소'(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4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체질량 지수(BMI)가 높고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비감염자보다 코로나19에 더 민감하다.
이번 연구의 초점은 신종 코로나가 체내 지질 대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히는 데 맞춰졌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인간 세포주(cell lines)를 배양해 4백여 개 유형의 지질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면 세포의 지질 수위가 크게 달라졌다. 심지어 어떤 지질은 감염 전의 64배로 늘기도 했다.
그런데 세포주에 따라 변화 폭엔 차이가 있었다.
한쪽 세포주에선 거의 80%에 해당하는 지질의 수위에 변화가 생겼지만, 다른 쪽 세포주에선 절반이 조금 넘는 지질만 수위가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질은 트라이글리세라이드였다.
원래 트라이글리세라이드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예컨대 세포막을 온전히 유지하거나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꼭 필요하다.
하지만 트라이글리세라이드는 콜레스테롤과 함께 동맥경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는 가능한 한 수치를 낮추려고 한다.
에너지가 필요할 때 세포는 트라이글리세라이드를 분해해 유용한 '연료', 즉 각각 트라이글리세라이드 분자를 함유한 지방산을 만든다.
신종 코로나는 세포의 트라이글리세라이드 수만 늘리지 않고, 세포의 지방 처리 시스템 자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곧 에너지의 연료로 지방을 활용하는 인체의 능력에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 단백질 24종에 테스트해, 지질 수위에 특별히 강한 영향을 미치는 몇 개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인체의 지방 처리 시스템을 교란하는 화합물도 찾아냈다.
배양 세포에 침입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이들 실험 화합물을 투여하면 48간 이내에 복제가 중단됐다.
이들 화합물은 또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의 신종 코로나 변이에도 비슷한 효능을 보였다.
널리 알려진 비만 치료제 오를리스타트(Orlistat)도 같은 방식의 테스트에서 신종 코로나 복제를 차단했다.
일반인에겐 스위스 로슈의 상표명 '제니칼'로 익숙한 이 약은 위장과 소장에서 지방 흡수를 막는다.
타페스 교수팀은 앞서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실험에서도 감염자의 지질 수위에 변화가 생긴다는 걸 확인했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타페스 교수는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늘어날수록 바이러스는 지방산의 형태로 더 많은 에너지 연료를 얻을 수 있다"라면서 "하지만 어떻게 바이러스가 이런 지방산을 이용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