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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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라면

2022-05-09 (월) 김관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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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에 와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 중의 하나가 패스트푸드점에서였다. 중증의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여기서는 장애인들도 저렇게 자유롭게 식당을 드나들며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있구나!’ 내 눈길은 틈틈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장애인 한 사람에 도우미 한 사람씩 붙어 앉아 음식을 먹여주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두 번째는 휠체어로 이동하는 이들이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승객들이 기다려 주는 건 물론 기사들이 친절하게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중증 장애인들에게 문학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뇌성마비 환자는 양호한 편이고 온 몸이 마비되어 음식도 먹여주어야하는 이, 근육경화증 환자. 이십여 명의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은 2주에 한 번 차량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한양대학의 강의실로 모였다.

한담을 나누는 시간에 그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어냐고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식당에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게 소망이라 했다. 마비된 두 다리가 성해 뛰어다니고 싶다든지 마비된 몸이 풀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싶다든지 하는 실현 불가능한 소망이 아닌 너무도 소박한 바람들이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연합회 대표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지하철에서 데모를 벌인 뉴스가 이어졌다. 해당 단체들 대표와 장애인협회 대표가 간담회를 여는가 싶더니 급기야 어느 당의 국회의원과 티브이에서 토론을 벌이는 장면도 방영되었다. 정부의 대표들은 시민을 담보로 전철에서 데모를 벌인 문제를 이슈로 내세웠지만 정작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세계 1위로 인기를 끄는가 하면 한국식당에 가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을 정도다. 외국인들이 김치 냄새를 지독히 혐오하던 시대를 살아온 내게 기내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서양인들을 보면 경이롭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은 선진국 국민임을 자랑하며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아직도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데모를 하게 만드는 나라가 선진국임을 자랑할 수 있을까?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김관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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