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연 부족하면 ‘T세포 공장’ 손상돼도 복구 어려워
▶ 가슴샘 재생 자극하는 메커니즘 첫 규명
▶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 센터, 미국 혈액학회 저널에 논문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 LFA-1 수용체(적색)와 면역 연접부를 형성해 종양 세포(백색)를 공격하는 T세포(청색). 이때 세포 밖의 마그네슘이 CD8+ T세포의 면역 조절 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위스 바젤대 J. Loetscher 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연(zinc)은 인체 세포를 구성하는 주요 무기물 가운데 하나다.
아연은 몸 안에서 생성되지 않아 적정량의 섭취가 중요하다.
특히 아동은 조금만 아연이 부족해도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임신 여성이 아연 결핍이면 기형아나 저체중아를 낳을 위험이 커진다.
효소의 보조인자로 작용하는 아연은 또 면역력 증강을 돕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철, 알루미늄, 구리에 이어 네 번째로 중요한 금속인 아연(원소 기호 Zn)이 어떻게 인체 면역력을 강화할까.
미국의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 센터' 과학자들이 최초로 그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아연은 병원체와 맞서 싸우는 T세포의 발달에 꼭 필요한 것으로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아연은 또 T세포 생성 면역기관인 흉선(胸腺·가슴샘)의 재생을 촉진했다.
프레드 허친슨의 면역학자인 제로드 두다코브 박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혈액학회 저널 '혈액'(Blood)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두다코브 박사는 "인간의 면역계에서 아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라면서 "면역계가 어떻게 손상된 부분을 스스로 복구하는지도 알아냈다"라고 말했다.
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두다코브 박사팀은 이전에도 흉선의 손상 복구 메커니즘을 연구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팀은 이 메커니즘을 통제하는 분자 경로와 세포 유형을 대략 알아냈다.
이를 표적으로 치료제를 개발하면 각종 백신의 효능을 개선할 수 있을 거로 기대됐다.
또 화학치료나 방사선 노출, 조혈모세포 이식 등으로 손상된 흉선의 재생을 촉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아연이 부족하면 감염에 맞서 싸우는 T세포가 줄고 흉선이 축소된다는 건 이미 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로렌조 로비노 박사도 비슷한 연구를 한 경험이 있었다.
아연이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아연이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아연이 결핍되면 구체적으로 흉선과 T세포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가 이번에 상세히 밝혀졌다.
생쥐에게 아연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먹이를 3주간 먹이자 당장 흉선이 작아지면서 성숙한 T세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연이 없으면 T세포의 완전한 성숙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또 면역계가 손상된 생쥐에게 아연이 부족하면 T세포 수의 회복이 지연됐다.
그러나 같은 생쥐에게 아연을 보충하면 곧바로 T세포 회복이 빨라졌다.
연구팀은 사람한테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것처럼 조작한 생쥐 모델 실험에서 비슷한 결과를 확인했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은, 주요 재생 인자를 분비하는 세포 주변의 아연 수위 변화였다.
다시 말해 아연 수위가 올라가면 흉선에 자극이 가해져 재생 과정이 촉발됐다.
T세포는 발달하는 동안 아연을 축적했다. 그런데 방사선 조사 등으로 T세포가 사멸하면 쌓였던 아연이 방출됐다.
세포는 GPR 39라는 분자를 이용해 외부의 아연 수위 변화를 감지했다.
연구팀은 이 분자를 자극해 세포 주변의 아연 수위가 높아진 것처럼 모방하는 실험 화합물을 만들었다.
이 화합물을 생쥐 모델에 투여하자 재생 인자가 더 많이 분비되면서 흉선 재생이 촉진됐다.
두다코브 교수는 "아연을 보충해 발달 과정의 T세포에 축적되게 하면 어떤 손상이 생겼을 때 아연이 다시 방출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표준 이상의 아연이 있으면 흉선 재생 경로를 자극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