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민 가족의 일상과 삶의 희로애락을 사실적으로 그려

2022-04-01 (금)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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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오후’(An Autumn Afternoon) ★★★★★ (5개 만점)

서민 가족의 일상과 삶의 희로애락을 사실적으로 그려

미치코는 홀아비인 아버지를 돌보느라 시집을 안 가고 있다.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라 불린 야수지로 오주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1962년작이다. 오주는 서민 가족의 일상과 그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감독으로 특히 가족의 해체를 잘 다루었다. 이 영화도 가족의 해체를 그린 것이다.

한 샐러리맨 가장의 인생의 상시로 변화는 물결과 그의 사회의 점진적 변화에 대한 체념과 수용을 민감하고 인자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답게 그린 영화다. 오주의 다른 영화들처럼 우아한 화면구도를 갖춘 고요하고 상냥하며 또 가을 오후의 상실감을 소슬하니 느끼도록 하는 작품이다.

슈헤이 히라야마(오주의 단골 배우 치슈 류)는 장성한 아들 카주오와 혼기가 꽉 찬 딸 미치코(시마 이와시타)와 도쿄의 아담한 작은 집에서 함께 사는 홀아비 회사원. 딸이 죽은 어머니 대신 가사를 전담하는데 히라야마는 점차 딸을 시집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막상 중매가 들어오면 이를 딸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딸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날 학교 동창 몇 명과 저녁을 먹은 뒤 히라야마는 과거 자기 스승으로 지금은 작은 우동 집을 경영하는 사쿠마의 가게에 들른다. 사쿠마도 홀아비로 그의 딸 도모코도 혼자 사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시집을 가지 않았다. 이 방문에서 히라야마는 도모코의 육체적 정신적 피폐함을 목격하고 미치코를 도모코와 같은 운명에서 구출하기 위해 딸의 결혼을 결심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영화로 유머와 통절한 페이소스를 고루 지닌 거장의 ‘스완 송’인데 모든 것이 감지하기 힘들만큼 조용하고 절제된 영화다. 오주는 현대사회 속에서 문화적 전통이 점차 겪어야하는 역설을 관조하면서 가족의 해체로 인한 고립과 장성한 여인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 그리고 부모의 장성한 자녀의 재정적 보조 등 제반 사회 및 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또 슬픔과 유머를 적절히 배분해가면서 나이 먹음과 부모의 의무와 고독 등을 잔잔하면서도 가슴 깊이 파고드는 감동적 솜씨로 다루고 있다. 특히 마침내 미치코를 시집보내고 난 뒤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의 어둠을 배경으로 혼자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히라야마의 을씨년스런 기운이 얹힌 모습을 찍은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비감한 라스트 신이다.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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