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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카드

2022-03-05 (토) 이은경 / 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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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인트 패트릭스데이(St. Patrick’s Day)가 오면 미국 시민권 선서식 날과 영주권 신청한 날이 떠오른다.

30여년 전 어느 날 새벽 3시에 산호세 다운타운으로 갔다. 아직 주위에는 깜깜한 적막이 흐르고 찬 기운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이민국 건물 앞에 도착해 보니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길게 줄 서있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백인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줄 선 사람들 대부분이 남미, 멕시코, 아시아계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며칠을 기다렸다고 했다.

남편은 길가에 슬리핑백을 깔고 아예 드러누웠다. 그렇게 날이 새고 이민국이 문을 열자 사람들이 줄 선 순서대로 이민국 건물 안으로 하나둘씩 불려 들어갔다.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와서 이민국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대기석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앞 사람 차례가 지나고 정오쯤 되니 사무관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또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다.


남편은 말이 없었지만 무척 불쾌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끼도 못 먹고 화장실도 교대로 재빨리 다녀오며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우리는 지칠 만큼 지쳐있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고 나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영주권 신청 접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이민국 직원 하나가 밖으로 나와 오늘은 여기까지 접수 끝이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들어가 버렸다. 하루 종일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망과 원망스런 눈빛으로 이민국 직원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못하고 떠났다.

“후유! 우린 그래도 다행이네. 저 사람들은 내일 또 와서 줄서야 되는 건가? 그런데 예약번호도 안 주고 너무하다. 그치?” 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이민국 대기실 의견함 위에 카메라만 없었으면 욕을 한바탕 써서 넣고 오고 싶었는데 아내가 영주권 못 받게 될까 염려되어 꾸욱 참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는 나의 반쪽, 나의 키다리 아저씨이고 이 땅의 유일한 내편임이 분명했다 .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문득 ‘그린 카드’라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영화 속 ‘그린 카드’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은경 / 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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