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파른 기호지세…어렵고 험난한 ‘빅 버니’

2022-02-25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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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기 (1) Rabbit & Villager Peak

가파른 기호지세…어렵고 험난한 ‘빅 버니’
가파른 기호지세…어렵고 험난한 ‘빅 버니’

기호지세(騎虎之勢) - , 한번 시작한 산행길이 결코 중도에 쉽게 어딘가로 빠져 나갈 수 없는 거칠고 가파른 흐름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진퇴양난(進退兩難) - , 위로 오르기가 대단히 고달프지만 그렇다고 돌아서서 이미 뜨겁게 달구어졌을 열사의 바닥으로 도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 또한 그렇다. 해발고도 5000’가 넘는 남가주의 산 가운데, 우리 Sierra Club의HPS Peakbagging List에 올라있는 281봉 중에, 고도는 겨우 6640’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지난한 산행으로 두루 알려진, 매운 고추, Rabbit Peak의 등정에 나선 일행을 뒤따르며 거듭 체감하는 소회가 바로 이 것이다.

오르기에 어렵고 험난한 산이라는 의미에서Big Bunny, Tyranolepus Rex라는 별칭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 Rabbit Peak을 오르는 산행루트로 Sierra Club에서 안내하는 코스는 3개가 있다.

편의상 필자 임의로 동쪽 루트, 서쪽 루트, 남쪽 루트로 구분하여 본다면, 지금 모두 10명의 정예대원이 팀을 이루어 오르는 이 길은 동쪽 루트에 해당한다. Salton Sea인근의 사막에서 출발하여 Rabbit Peak에 오르고, 하산은 Villager Peak을 경유하여 남쪽 루트의 등산시작점인 Anza Borrego사막의 S22도로(Borrego Salton Sea Way)상의 #319 Callbox 옆 Thimble Trailhead에서 마치는 약 20마일의 일정인 것이다.


필자의 과거산행기록을 살펴보면, 서쪽 루트는 Clark Dry Lake에서 출발하여 Rabbit에 오른 뒤, Villager를 경유하여 Thimble Trailhead에서 마치는 산행(2020년 2월)으로, 18.5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는 7900’이었고, 15시간 22분이 소요됐었다.

남쪽 루트는 S22도로의 Thimble Trailhead에서 출발하여 Villager에 오른 다음 Rabbit에 올랐다가 다시 Villager를 경유하여 하산(2012년 10월)한 것으로, 21.2마일, 순등반고도 7900’에 15시간 11분이 소요됐었다.

그리고 Sierra Club의 HPS List나 일반 등산안내책에는 소개되지 않은 동남쪽 루트로 Thimble Trailhead에서 출발하여 Rosa Point, Mile High Peak을 거쳐 Villager에 오르고 이어서 Rabbit에 오른 뒤 다시 Villager를 경유, 출발점이었던 Thimble Trailhead로 하산(2016년 4월)했었는데, 26.3마일, 순등반고도 11300’에 19시간 25분이 소요됐었던 과연 지난한 산행이었다.

결국 필자는 서로 다른 루트로 Rabbit Peak을 세차례 올랐었는데, 동쪽 루트는 오늘이 초행이다. 하긴 오늘 이 10인의 대원 모두에게 이 길이 초행이다. 시에라클럽의 HPS에서 281개 봉의 등산길로 안내되고 있는 모든 루트들을 다 섭렵해 보겠다는 제이슨과 써니의 당찬 발의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오늘의 이 산행이다.

원래는 Navigation이 어려운 사막지역의 산을 일행전원이 초행인 상태에서 산행을 시도한다는 발상은 결코 이성적이랄 수는 없을 터이나, 주변에 이 루트의 산행경험이 있어 우리를 리드해 줄 수 있는 분을 찾기 어려워 빚어진 고육지계이자, 제이슨과 써니의 도전정신 개척정신이 낳은 용기의 산물이겠다.

제이슨이 리더가 되고 써니와 내가 보조리더가 되는 형식으로 이 동쪽 루트로의 산행계획을 세웠고, 이에 대해 Club으로부터 공식산행의 인가를 받는다. 이를 Sierra Club의 ‘Campfire’에 올린 결과, 7인의 희망자가 접수된다. 다행히 모두가 다 경험이 많고 잘 걷는 듬직한 회원들이다.

이번 산행의 1차 집결지이며 산행의 종점이 되는 S22상의Thimble Trailhead까지의 운전거리가 LA에서는 편도 190마일 정도이고 통상 4시간 내외가 소요되는 상황인데, 모이는 시각이 토요일(02-12-22) 새벽 4시여서, 내 오랜 등산동료인 일우와 나는 금요일 오후에 LA를 출발하여 집결지에서 야영키로 한다. 고래희의 나이에 접어든 작금에는 힘든 산행을 잘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잠을 충분히 자 두어야 함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가게를 일찍 나와 금요일 오후 2시반에 일우의 집에 들러 함께 출발한다. 중간에 운전을 교대하며 쉬지 않고 달렸으나, 도로의 정체도 심해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야영지에 도착한다. S22도로 진입전의 마지막 주유소에서, 황량한 사막에서의 만약의 경우를 감안하여, 개솔린을 보충한다. LA보다는 갤런당 거의 1불이 더 비싼 가격이지만, 이런 외진 곳에서 개스를 보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

Thimble Trailhead에 도착하니 제이슨과 써니, Stephen과 Catherine이 이미 도착해 있다. 일우가 텐트를 치는 동안, 나는 밥과 김치가 전부인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온통 푸석 푸석한 모래밭이지만, 내 Honda CRV의 트렁크에 딸려있는 접이식 테이블을 펴놓으니, 취사와 식사의 풍경이 제법 그럴듯 하다. 새벽 3시에 기상키로 하였기에 서둘러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방금 먹은 저녁밥을 소화시킬 여유도 없이 그대로 자리에 눕는다. 누운 채로 일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일우가 먼저 잠에 빠져든다.

옆 텐트에서의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이미 3시가 되어있다. 밥을 해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지만 그래도 라면 1개를 끓여 일우와 나누어 먹는 것으로 어정쩡한 아침을 삼는다. 오늘 늦은 밤에 이곳에서 산행이 마쳐질 예정이며, 오늘 밤을 다시 이곳에서 자야 하기에, 기왕에 세워둔 텐트를 걷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하고, 밤을 지내는데 필요할 물품들을 텐트안에 다 넣어 둔다. 우리가 타고 온 내 차는 잠시후에Salton Sea쪽 등산출발점으로 가야 하고, 내일 아침까지는 그 곳에 그대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텐트에 넣어둘 물건들이 꽤 많다.

대원 모두가 4시에 모여 이동키로 했으나, 다소 늦어진다. 우리 일행이 타고 온 6대의 차량중 3대는 이곳에 두고, 다른 3대의 차량에 우리 10인이 모두 타고 등산출발점으로 향한다.

약 30마일을 이동하여 등산시작점인 Filmore St/79th Ave 교차점 노변에 차를 세워놓고, 실제 산행에 나선 시각은 05:20이다. 출발장소의 해발고도는 내가 지닌 Garmin GPS가 해수면보다 낮은 -104’를 가리키고 있어, 몇 년전의 Bad Water to Telescope 등산의 기억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Navigation의 중요함과 난해함을 고려하여, 제이슨과 써니 두 사람이 앞장을 서서 대원들을 리드하고, 나는 맨 뒤에 서서 Sweeper역을 맡기로 한다.

온전한 만월은 아니라도 꽤 많은 달빛이 있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헤드램프의 도움이 불가피한 어둠속에 먼저 모래지역을 지나고 나니, 온통 크고 작은 돌과 바위들 투성이면서 여기 저기 이리 저리 움푹 움푹 패인 거친 사막지대에 접어든다. 이따금씩 바위덩이 위에 올려놓은 Ducks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방향을 잡아 간다는 점에서 크게 위안이 된다.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려 올려 놓은 돌들이 대체로 밝은 하얀돌들이다. 이 Rabbit Peak등산의 특성상 이 지대를 통과할 때는 거의 다 어두운 새벽이 아니면 깜깜한 밤일 것이기에 특별히 어둠속에서도 눈에 잘 띄도록 흰돌들을 선별하여 올려 놓았을 선행(先行) 등산인들의 그 배려가 듬직하고 훈훈하다.

06시가 되어지면서 헤드램프를 벗게 되고, 06:30에는 일출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느라 잠시 걸음을 쉰다. 떠오르는 해맑은 태양을 꼭닮은 붉은 환희감 행복감이 온몸에 충전된다.

산행에 나선지 대략 2시간 가까이 되어(07:14), 산줄기의 첫 시작지점에 이르른다. 3.7마일이 되는 곳으로 Alamo Canyon과 Barton Canyon의 사이가 된다. 비교적 뚜렷이 드러나는 Use Trail이 지속되고 있어 반갑다. 이렇듯 건조하고 험난한 곳임에도 우리 등산인들의 발길이 구석구석 이어지고 있었음을 말없이 증언해 준다. 비좁은 Trail을 따라 일렬로 줄을 지어 좌로 또 우로 나아간다.

4.75마일지점(1850’)에 작은 Saddle이 있다. 간간이 만나던 Ocotillo, Agave, Silver Cholla Cactus, Brittlebush등의 식물들이 갈수록 많아지는데, 머잖아 싱싱한 잎새와 더불어 예쁜 꽃을 피울 준비가 한창인 듯 하다. 이렇게 뜨겁고 척박한 산자락임에도 의연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식물들의 생존투지에 경의를 표하며, 개화기가 되기 전의 조속한 시일내에 비를 한번 흠뻑 내려주는 하늘의 축복을 기원해 본다.

다시 5.6마일, 고도 2600’ 지점에서 다시 그리 작지 않은 Saddle을 만난다(08:46). 아직 주봉의 줄기에는 도달치 못했으나, 이곳부터는 경사가 꽤 급하게 또 길게 올라간다. 제법 급한 경사의 산줄기를 따라 선두를 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멀게 또 높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봉우리를 다 오르니(09:05), 이제 경사가 완만한 개활지가 나온다. 아직은 아주 이따금씩 Ducks를 볼 수 있는 가운데, 뒤를 돌아보면 Salton Sea의 푸른 물이 제대로 잘 드러나, 고도가 꽤 높아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제법 큰 바위들도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사이 사이로 역시 Ocotillo, Nolina, Brittlebush, Mojave Yucca가 아주 많고, Juniper, Mormon Tea, Barrel Cactus, Creosote 들도 드물지 않다.

이윽고 Ducks들도 이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완만한 지형이 다하고 직접 주봉을 받치고 있는 산줄기의 아래로 볼 수 있는 Gully에 도달하면서(10:07; 6.65마일; 3235’), 우리의 진행방향이 약간 굽어진다. 등산시작점으로 부터 여기까지는 주로 서남쪽으로 올라온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약간 더 서쪽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Gully라서 그런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더 두드러지고 초목들도 상대적으로 더 무성하여 위로 오르기가 쉽지 않다. 등산로는 물론 Ducks나 또는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전혀 없는, 아마도 원시 그대로일 산줄기이다. 때로는 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잠깐 옆의 험한 비탈로 올라서야 하는 등 자칫 미끄러질 우려도 커진다.

머잖아 이젠 아예 Gully를 벗어나 오른쪽 산줄기의 주능선으로 올라서서 주봉쪽을 향하여 가파른 줄기를 올라간다(10:50; 7.0 마일). David Money Harris가 그의 책 ‘Inland Empire’에서, 이 루트를 설명하며, 1.1마일거리에 2600’ 고도를 올라가는 구간이 있다 했는데, 바로 이 지역을 언급한 것이겠다. 아마도 45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경사구간인데, 경사각도 문제지만, 오르기 쉽잖은 큰 바위들이 이어지고, 예리한 창과 칼로 무장한 듯 굳세고 날카로운 Agave, Cholla, Yucca 등이 빽빽하여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쉽지 않다. <다음에 계속>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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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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