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는 ‘전쟁 억제력과 외교’를 적절히 배합해가며 현명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응했다. 워싱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가 치러야할 혹독한 대가를 경고하는 한편 모스크바의 위협에 맞서 유럽 우방국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서방측의 약속을 요구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대신 워싱턴은 군축에서 미사일 배치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 러시아와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바이든 행정부가 저지른 전략적 실수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전략의 가장 중요한 룰 가운데 하나는 적진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아쉽게도 미국의 외교정책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달 초, 러시아와 중국은 양국의 ‘무한한 우정’을 확인하는 5,000자 성명서를 내놓았다. 지금의 중-러 관계는 지난 50년 중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 보인다.
저무는 국가인 러시아에게 중국의 지지는 신이 보낸 선물이다. 서방의 제재위협에 러시아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는 오일과 가스의 중국 판매량을 대폭 늘리고, 필요한 경우 중국 정부가 더 많은 에너지 상품을 추가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미국의 금융제재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가 중국의 다양한 기구와 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크렘린의 고위 보좌관인 세르게이 카라는 최근 니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우리의 전략적 방충막”이라며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는 중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지원에 의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단지 독재국가들 사이의 작당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 모두 독재국가였던) 2014년,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베이징은 아직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베이징은 러시아의 그루지아 개입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한편 그루지아의 영토보전과 독립을 지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서방의 적대국이지만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그럼에도 두 나라를 한 묶음으로 엮는 것은 워싱턴이 전략보다 이념을 앞세운다는 신호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지정학적 불량국가다. 러시아는 이미 이웃국가인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들의 영토 중 일부를 점령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12개 이상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사이버테러 공격을 가해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모스크바는 시리아의 바셰르 알-아사드와 같은 우방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독일과 영국 등 러시아 밖에서 활동하는 정적들을 연이어 살해했고, 석유 대국의 지위를 이용, 오일과 가스 가격 상승을 불러오는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을 부추겨 주머니를 불렸다.
중국은 다르다. 신흥 강자인 중국은 높아진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추구한다. 일부 국가들을 겨냥한 공격적 외교정책을 펼치긴 했지만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른 지금은 그 누구보다 지구촌의 안정을 원하는 입장이다. 로버트 매닝이 2020년 “포린 폴리시”지를 통해 지적했듯 “베이징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와 그 이외의 국제기구를 배척하거나 대체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기존의 틀 안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려 노력할 뿐이다.”
과거에 베이징은 리비아, 이란과 북한 등 불량국가들에 대한 유엔 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비록 지난 몇 달 동안 서방국가들과의 공조가 약화되긴 했지만 유엔안보리에서의 거부권 행사 빈도는 러시아나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 중국은 미국에게 분명 중대한 도전이지만,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미국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조치를 시행하는 등 국내정책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 19세기 유럽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독일의 오토 본 비스마르크의 핵심 전략은 적대자들과 늘 가까운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 사이의 유대감보다 더 높은 친밀도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리처드 M. 닉슨과 헨리 키신저가 중국을 소련연방으로부터 떼어놓은 1972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베이징 사이의 간격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이전 거리보다 단축됐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지금 워싱턴 정가에는 베이징으로부터 모스크바를 떼어내는 ‘역방향 키신저’ 외교를 시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돈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바로 이 노선을 택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을 만들어낸 푸틴을 너무도 안이하게 이해한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역방향 키신저 정책이 아니라 중국과의 실무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이야말로 헨리 키신저가 추구했던 목표다.
이념이 전략에 우선했던 냉전 초반에 워싱턴은 모든 공산권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놓는데 기여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달리 취급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미국은 (베트남전과) 25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이란 및 북한을 싸잡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지금도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적들이 하나로 뭉치도록 도와서는 안 된다. 이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또 다시 길고도 험한 시간을 견뎌내야 할 필요가 없기 바란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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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