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심산유곡 캠프 리조트 역사를 품은 샌개브리얼

2021-12-17 (금) 정진옥
크게 작게

▶ 산행가이드 Switzer Falls (1)

심산유곡 캠프 리조트 역사를 품은 샌개브리얼

Switzer Falls에 이르는 등산길.

LA지역에 살면서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샌게브리얼산맥을 동서로 관통하며 La Canada에서 Wrightwood를 잇는, 전장 66마일의 Angeles Crest Highway(Hwy2)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드라이브 자체를 즐기는 듯한 오토바이들과 포오쉐, 페라리 등 고급 스포츠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왕복 2차선으로 잘 포장된 길이, 인적도 거의 없이, 아름답고 험준한 고산준령들 사이 사이를 뚫고 100km가 넘는 거리를 구불구불 뻗어 나가니, 이러한 환상적인 길이 또 몇이나 있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Hwy2는, LA에서 불과 1~2시간 사이에 백두산보다 높은 험한 산들의 자락에 곧바로 닿을 수 있게 해주니 등산객들에겐 가히 Royal Road라 하겠고, 거칠고 웅장한 만학천봉 비경에다 간단없이 굽고 펴지는 굴곡까지 있으니 드라이브족에게는 그야말로 Dream Road라 하겠다.

오늘 소개코자하는 Switzer Falls 등산 코스는, 이 Hwy 2의 등장과 함께 그 명암이 크게 엇갈린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Perry Switzer라는 목수가 있었다. 한 때 건강이 나빠졌었으나 샌게브리얼산맥에 들어와 요양을 하면서 몸이 회복되었고, 이에 아예 이곳에서 살기로 작정을 한다. LA 강의 지류인 전장 25마일의 Arroyo Seco의 상류 5마일 지점에 집을 짓고 등산객을 상대로 숙식을 제공하는 Trail Resort사업을 구상해 낸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곰과 산사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깊은 산속에 누가 들어가서 돈을 내며 잠을 자겠는가 라며 모두 적극 말리는 것이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이를 추진해 나갔고, 결국엔 이를 성사시킨다. 1884년의 일이다.

Arroyo Seco란 “Dry Stream”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인데, 1770년에 이 곳을 탐험했던 Gasper de Portola가 부여한 지명이라고 한다. 그가 답사한 계절이 마침 가을철 갈수기로 물의 흐름이 미미하였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상류가 아닌 하류쪽만 답사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보이는데, 사실 이 곳은 연중 내내 맑은 물이, 특히 상류로 가면 더욱, 흘러내리며 Oak, Alder, Maple 등이 우거진 시원하고 아름다운 개울이 있는 숲이며 계곡이다.

Switzer가 이곳에 Resort를 지었을 그 당시에는, 당연히 2번 도로(Angeles Crest Highway)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였기에, 등산객들이 이 곳을 찾아 오려면, Alta Dena에서부터 걷거나 말을 타고 9마일의 거리를 60여번에 걸쳐 냇물을 건너며 들어와야 하는 심산유곡의 오지였다고 한다.

그가 공사에 필요한 물자나 생필품을 운반하기위해 이용한 당나귀 마차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며 개울을 건너 다닌다고 하여, “Perry제독(Commodore)”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데, 이 “Perry” Switzer제독은, 산을 사랑하여 그와 함께 Camp에서 살고 있던 젊은 부부 Bob & Liz Waterman과 함께 1889년에 3주간의 일정으로 샌게브리얼 산맥을 종단하는 탐험을 하게 되고, 이 때 이들이 오른 산 가운데 하나를 Liz에게 헌정하여 Lady Waterman’s Peak(현재는 Mt. Waterman으로 불림)으로 명명한 그 일화속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역사상 실재했던 진짜Perry제독이란 누구일까? 필자가 유추하기로는, 1853년에 미 해군의 함대를 끌고 일본의 Uraga에 입항(이를 ‘흑선내항’이라고 함)하여 무력시위를 통해 일본 막부정권의 쇄국정책을 개방으로 바꾸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막부체제가 무너지고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Matthew C. Perry제독 (1794~1858)을 빗대어 부른 것 일 듯하다. 그 당시에는 미국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유명 해군제독이었을 테니, 이 두사람 간에 Perry란 이름이 같이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리라. (이 실제의 Perry제독이 사용했던 성조기를, 맥아더장군의 아이디어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일본의 항복조인식장인 미주리함 상에 걸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세운 숲속의 Lodge를 Switzer Camp라고 했는데, 0.5마일 아래에 있는 Switzer Falls와 함께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일찍이 1909년 3월에 전국적인 뉴스의 중심에 오른 일이 있었다고 한다. 미 우정국 소속의 25세의 젊은 비행사 Charles Lindberg 가 “The Spirit of St. Louis” 라는 비행기를 몰고, 뉴욕에서 파리까지 3,600마일의 대서양 하늘을 하루만에 Non-stop 으로 횡단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1927년 5월이니, 1909년의 시기에는 아직 비행기라는 것이 일반에 보급되기 훨씬 전이었는데, 인근도시인 Pasadena 에서 6명이 승선한 Gas Balloon이 갑작스럽게 닥친 악천후와 돌풍에 휩쓸려 14000‘ 상공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이 곳에서 북동쪽으로 3마일쯤의 거리에 있는 눈 덮인 Strawberry Peak 정상 바로 아래의 수직절벽에서 불과 3m 떨어진 곳에 불시착했었다고 한다.

이들의 종적이나 생사를 전혀 모르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끌게 된지 3일후에야, 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이 이곳 Switzer Camp 에 설치되어있던 전화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비로소 미국민들이 안도의 숨을 내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1912년에 이르러 Lloyd & Bertha Austin부부가 이를 인수하여 경영을 하게 된 후로는, 그들의 각별한 친절과 배려에 힘입어 더욱 인기가 올라가서, 주말에는 수백명씩의 인파가 몰리는 샌게브리얼 산간지역 최고의 Trail Resort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부부가 실천한 많은 아이디어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도시에 살고 있는 등산객들이 9마일에 걸친 숱한 굽이 굽이를 오르고 돌아서 이윽고 Switzer Camp에 이를 때 쯤이면, 다들 지치고 배가 고플 것을 감안하여, Camp 에서 0.5마일쯤 못 미친 곳의 Manzanita숲에 소뿔나팔을 매달아 놓아, 그들이 식사주문을 원하는 사람수 만큼의 소리를 그 곳에서 불게 하고, Camp에서는 이를 듣고 해당인원분의 음식준비를 시작함으로써 방문객들이 Camp에 도착했을 때에는 따끈한 식사가 지체없이 제공되어졌다.

이 밖에도 테니스 코트와 Croquet Court, 도서관과 작은 교회, 야외 무도장과 어린이 놀이터 등도 갖추어져 방문객들이 각자의 사정이나 취향에 맞춰 즐겁고 편안히 휴식할 수 있게 하였는 바, 이 Switzer Camp의 숙박등록부에는 Henry Ford, Shirley Temple, Clark Gable, Mary Pickford 같은 유명인사들의 이름도 올라간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랄까 이런 호시절도 1936년을 고비로 종언을 고하게 된다.

1929년에 죄수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착공되어 샌게브리얼산맥을 야금야금 관통해 들어가던 2번 도로가 드디어 이 해에 Red Box까지의 1차 구간이 개통되어진 것인데, 이로써 이 때 쯤 이미 대중화된 자동차를 이용하여 불과 1~2시간이면 더 깊은 산악지역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됨으로써, Switzer Camp는 예전의 “깊은 계곡”으로서의 의미가 쇠퇴하게 되고, 급격히 방문자가 줄어 들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