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울어가는 가문의 네 자매를 주인공으로 한 가족 멜로물

2021-11-26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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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오카 자매들’ (The Makioka Sisters) ★★★★★(5개 만점)

기울어가는 가문의 네 자매를 주인공으로 한 가족 멜로물

키모노 차림의 마키오카 자매들이 오사카 사쿠라 구경을 왔다.

주니치 다니자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곤 이치가와 감독이 1983년에 만든 영화로 2차 대전 직전인 1938년 오사카에 사는 기울어가는 마키오카 가문의 네 자매를 주인공으로 한 가족 멜로물이다. 소설은 1950년에 아베 유타 감독에 의해 맨 먼저 영화화했다.

첫 장면에서 화사하게 만개한 사쿠라를 보여준 카메라는 이어 푸른 기모노 차림에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바른 네 자매 중 둘째인 사치코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 업 한다. 사치코를 비롯해 네 자매의 첫째인 추루코와 셋째와 넷째인 유키코와 타에코 및 사치코의 남편 테이노수케는 연례 사쿠라 구경을 위해 쿄토에 왔다. 이들이 사쿠라 구경을 가기 전에 숙소에서 나누는 대화는 유키코의 선을 보는 얘기. 추루코와 사치코는 시집을 갔는데 셋 중 가장 보수적이요 수줍음 많고 과묵한 유키코는 혼기를 놓쳐 언니들의 속을 태운다. 유키코는 계속해 선을 보지만 모두 퇴짜를 놓는다. 그런데 테이노수케는 순진한 유키코를 연모한다. 넷 중 가장 신식이요 반항적인 타에코는 ‘모던 걸’로 연애쟁이인데 집안 전통상 언니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가 없어 시집 갈 생각은 아예 포기한 상태.

마키오카 가문은 한 때 부상이었으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문이 기울어가는 상태. 영화는 시대와 가치관과 가족의 전통과 사회상 등이 변해가고 있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구시대를 상징하는 네 자매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또 대처하는가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고요하면서도 밀도 있고 심도 짙게 묘사하고 있다.


이들 네 자매는 몰락한 귀족 사회를 상징하는데 그들의 현대화의 물결 앞에서

과거를 지키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자매들의 내밀하고 세세한 일상사를 통해 거의 긴장감이 감돌만큼 무게 있게 그려졌다. 과거에 사는 자매들의 얘기이니 만큼 영화는 전편에 애잔한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키모노와 오사카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칼러 화면이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화려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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