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로 교차살인을 하면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스릴러

2021-11-12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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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Strangers on a Train) ★★★★½(5개 만점)

서로 교차살인을 하면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스릴러

브루노가 가이(완쪽)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하고 있다.

만약에 당신이 아내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당신 앞에 나타나 “내가 당신 대신 당신의 아내를 죽여 주겠오”라고 제의한다면 당신은 이런 제의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유명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 가이 헤인즈는 천박하고 부정한 아내 미리암이 이혼을 안 해줘 속을 끙끙 앓고 있는데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브루노 안토니라는 사람이 가이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한다.

브루노(로버트 워커)의 제의란 자기가 미리암을 죽여 줄 테니 가이(팔리 그레인저)는 대신 돈 많은 브루노의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것이다. 전연 살인의 대상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둘이 서로 교차살인을 하면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이런 교차살인이 작품의 중심 플롯을 이루는 영화가 알프렛 히치콕이 1951년에 감독한 흥미진진한 심리 살인 스릴러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이다. 가이는 현재 미 연방 상원의원인 모턴씨의 아름답고 정숙한 딸 앤(루스 로만)과 열애 중인데 결혼을 하고 싶어도 별거중인 미리암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 미리암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한편 부잣집 외아들로 마마 보이인 탕자 브루노는 자기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죽인 뒤 유산을 차지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가이는 브루노의 교차살인 제의를 고약한 농담 정도로 여기고 무시하는데 브루노가 밤에 혼자 유원지에 놀러온 미리암을 진짜로 교살한 뒤(잔디 위에 떨어진 도수가 높은 미리암의 안경 렌즈에 반사되는 교살장면을 찍은 로버트 벅스의 흑백촬영이 작품과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었다) 가이 앞에 나타나 “이젠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여야 할 차례”라고 요구한다.

미 여류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뛰어난 스릴러로 어떻게 보면 가이와 브루노는 한 인물로 봐도 될 것이다. 영화에서는 둘 사이에 호모 에로틱한 분위기마저 조성하고 있다.

기막히게 연기를 잘 하는 것이 로버트 워커다.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32세로 요절한 워커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뱀처럼 미끈미끈한 연기를 하면서 인간의 악마성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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